산행기 및 여행기

신선이 머무는 곳. 그후..., (1)

월지 2006. 6. 25. 20:06

2006. 6. 24.(토)

이날은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한 스위스와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출근 부담이 없는 날이라,

새벽부터 아이와 마누라를 깨워서

문수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문수 월드컵 경기장의 응원인파

 

경기장은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씷어하는 체질이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놀이공원 같은데는

가급적 가지않는 성격이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수만명의 사람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연출하는

붉은 물결과 우렁찬 함성은 '나'라고 하는 하나의 물방울이

집단의 거대한 파도 속에 녹아들게 하는 유쾌한 체험이었다.

 

후반전 중간쯤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이

이날의 경기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아 결국 2대 0으로

우리 대표팀이 지고 만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경기관전 보다는 사람구경이 더 재미있었기 때문에

아침 잠을 설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경기장을 나와 붐비는 식당에서 아침 밥을 먹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니 오후 2시가 넘어 있었다. 

 

지난 주에 갔던 내 밀원(密園)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 위해

베낭을 챙겨 차를 몰고 서창을 지나 덕계 못미쳐 주진마을 입구에서

우회전 하여 구불구불한 임도를 타고 오르다 미타암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어정거리느라 그랬는지,시각은 벌써 4시 30분이었다.

 

갈림길

 

법수원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500m쯤 평탄한 산허리길을 걸어가니 법수원이 나왔다. 

 

법당

법당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법수원 법당 앞마당에 다투어 피어난

접시꽃의 화사한 빛깔과 백합의 은근한 향기가

산객의 눈길과 발걸음을 잡아 끌었다. 

 

법수원 계곡

능선으로 오르는 돌계단길

 

법수원 왼편 계곡을 지나자

가파른 돌계단길이 나오더니

보현사에서 올라오는 산능선길과

만날때까지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비지땀을 훔치며 산능선길에 이르러

방향을 다시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니

주위의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능선

덕계

소주공단과 서창

 

왼쪽으로 소주공단과 서창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덕계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능선 왼쪽 계곡

능선 왼쪽 계곡

저 멀리 천성 1봉

저 멀리 원적봉

바로 앞 천성 2봉

저 멀리 운해 위로 고개를 내민 문수산과 남암산

 

좀 더 올라가니 서쪽으로는 천성 1봉과 천성 2봉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문수산과 남암산이 하얀 운해를 뚫고 우뚝 솟아 있었다.

 

산능선을 따라 북진을 계속하다

영산대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보이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 내려오니

어느새 밀반늪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왔다.

 

밀반늪 입구

 

억새의 군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얼마를 걸어가니

키 큰 나무들은 사라지고 온갖 잡풀들이 무성한 초원이 펼쳐졌다.

 

밀반늪

밀반늪

밀반늪

밀반늪

 

배낭을 벗고 털썩 주저 앉았다.

지난 번처럼 라면을 끓이고 소주를 마셨다.

 

원시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가끔씩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깼다.

 

시간이 멈추고 생각도 끊겼다.

나는 녹아 없어지고 그저 하나의

고요한 풍경(風景)만이 있을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온몸이 눅눅해지고

주위가 어둠에 젖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짐을 챙겨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합수부(合水部)에 이르니

주위는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합수부에서 법수원으로 이어지는 계곡을 탔다.

처음에는 계곡으로 희미하게 새어드는 빛에 의지했으나

어둠의 농도가 점점 짙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랜턴을 꺼내 들었다.

 

비오듯 땀을 솓으며

곡예하듯 계곡의 바윗돌을 탔다.

 

계곡은 얼마간 급격하게

고도를 낮추더니 서서히 평탄해졌고

바로 그 지점에서 눈에 익숙한 법수원 다리가 나타났다. 

 

다리 옆 평평한 바위에 걸터앉아

폐부 깊숙히 담배연기를 빨아 들였다.

 

산아래의 불빛

 

산아래로 휘황한 문명의 빛이

담뱃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밤 9시 30분이었다.

 

 

 

2006.  6.  24.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