友難
우난
金相定
김상정
里有父子同宮而居者。其子喜結友。日出門與友遊。出必醉飽而反。
리유부자동궁이거자。기자희결우。일출문여우유。출필취포이반。
어떤 마을에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아들이 벗들과 사귀기를 좋아하여 날마다 문밖으로 나가 벗들과 어울리면서 놀았는데,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술에 잔뜩 취해 돌아왔다.
或時不出。友至蹝履欵門者甚衆。
혹시불출。우지사리관문자심중。
가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 있을 적에는 벗들이 집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자들이 아주 많았다.
父曰是皆何如人。曰友也。曰友難而友多至此乎。
부왈시개하여인。왈우야。왈우난이우다지차호。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였다.
“저들은 누구냐?”
“저의 벗들입니다.”
“벗을 사귀기는 어려운 법인데, 벗이 그렇게도 많단 말인가?”
一日父殺猪席褁。而謂其子曰觀於而所友者。曰擔且前。而所最信友誰也。
일일부살저석과。이위기자왈관어이소우자。왈담차전。이소최신우수야。
어느 날 아버지가 돼지를 죽이고서 거적으로 싼 다음, 아들에게,
“네가 벗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가 보자.”
하고는, 또,
“이것을 짊어지고서 앞장서라. 네가 가장 믿을 만한 벗이 누구냐?”
하였다.
前至其所最信友之家。告其友曰吾殺人急。今負以來在此。友曰諾。且入圖之。
전지기소최신우지가。고기우왈오살인급。금부이래재차。우왈낙。차입도지。
아들이 돼지를 짊어지고 앞장서서 자신이 가장 믿을 만한 벗의 집으로 가 벗에게,
“내가 오늘 저녁에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다급한 맘에 지금 시체를 짊어지고 널 찾아왔다.”
하자, 그 벗이,
“그런가? 집 안으로 들어가서 함께 시체를 처리하자.”
하였다.
立食頃不出。呼又不應。曰咄獨爾乎哉。
입식경불출。호우불응。왈돌독이호재。
그러나 한 식경이 지나도록 그 집 앞에 서 있었는데도 그 벗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소리쳐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면서,
“허허, 너 혼자서 처리해야겠구나.”
하였다.
去而至他。告其友曰吾今晩殺人急。輒來與若謀。友咜曰此何如事。速去。遅將累我。
거이지타。고기우왈오금만살인급。첩래여약모。우타왈차하여사。속거。지장누아。
아들이 그 집을 떠나와 다른 집을 찾아가 그 벗에게 고하기를,
“내가 오늘 저녁에 사람을 죽이고서 다급하여 너를 찾아왔다. 너와 함께 시체를 처리했으면 한다.”
하자, 그 벗이 소리를 치면서 말하기를,
“살인이 얼마나 큰일인가. 속히 떠나가라. 머뭇대면 나에게 누를 끼칠 것이다.”
하였다.
曰咄獨爾乎哉。又去而之他。凡擔而走三四家。率皆不見接。意無聊。其擔益重。
왈돌독이호재。우거이지타。범담이도삼사가。솔개불견접。의무료。기담익중。
그러자 아버지가 다시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허허, 너 혼자서 처리해야겠구나.”
아들이 또다시 다른 벗을 찾아갔다. 시체를 짊어지고서 서너 집을 찾아갔으나, 모두 만나주지 않았다. 마음은 허탈하고 짐은 더욱 무거워졌다.
曙皷動。父曰而友盡乎。吾有相識人在。遂往叩其人之門而告其人。如其子之告其友者之爲。
서고동。부왈이우진호。오유상식인재。수왕고기인지문이고기인。여기자지고기우자지위。
날이 장차 밝으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너의 벗이 이제 더는 없는가?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찾아가 보자.”
하였다. 아버지가 그 사람의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고는 아들이 그의 벗들에게 고했던 대로 말해 주었다.
其人驚曰止。東方且白矣。入取鍤。且毁其卧室之堗。顧曰助我。
기인경왈지。동방차백의。입취삽。차훼기와실지돌。고왈조아。
그 사람이 깜짝 놀라면서,
“잠깐만 있으시게. 조금 있으면 날이 밝을 것이네.”
하였다. 그리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 삽을 가지고 나와 안방의 구들을 들어내려고 하면서 아버지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자네도 나를 도와 구들을 들어내시게.”
하자,
曰毋。堗不必毁也。指席褁者曰猪也。因告其人其子事。
왈무。돌불필훼야。지석과자왈저야。인고기인기자사。
아버지가 말하기를,
“그러지 마시게. 구들을 들어낼 필요 없네.”
라고 하고는, 거적으로 싼 것을 가리키면서,
“저것은 죽은 돼지네.”
하였다. 그리고는 아들의 일을 그 사람에게 말해 주었다.
其人投鍤而笑。遂相與市酒啖肉而去。其子大慙悔。歸而不復敢談友。
기인투삽이소。수상여시주담육이거。기자대참회。귀이불복감담우。
그 사람이 삽을 내려놓고 웃었다. 드디어 술을 사와 그 돼지고기를 안주 삼아 먹고서 돌아왔다. 아들이 크게 부끄러워하면서 후회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다시는 벗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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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정 (金相定, 1722~1788)의 『석당유고(石堂遺稿)』중 「우난(友難)」
*사(蹝): 천천히 걷다. 밟다. 짚신
*과(裹): 싸다. 얽다.
*돌(咄): 꾸짖다. 소리 질러 부르는 소리
*첩(輒): 문득. 쉽게. 갑자기. 번번이
*타(吒): 꾸짖다.
*료(聊): 애오라지. 귀가 울다. 의지하다. 힘입다.
*서(曙): 새벽. 날이 밝다.
*고(鼓): 북
*삽(鍤): 가래
*돌(堗): 굴뚝
*담(啖): 먹다.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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