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성은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이나 규칙성을 찾으려고 한다. 즉, 잡다하고 혼란스럽게 보이는 현상들 속에서 어떤 규칙이나 법칙을 찾아 그 현상들을 통일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통일적 이해를 위한 지식체계가 곧 근대적 의미의 학문(學問)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와 역사의 운동이나 변화에도 일정한 법칙이나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인류의 역사를 신의 시대, 영웅의 시대, 인간의 시대로 나누고 각각의 시대는 역사 속에서 번갈아 등장한다고 한 이탈리아 역사철학자 비코는 근대 역사철학(歷史哲學)의 선구자라 할만하다.
한편, 우리가 개개의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이 아닌, 역사 그 자체에 던질 수 있는 질문이 있다면 그 내용은 무엇일까. 수많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크게 보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범주(範疇)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는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역사 속에서 개인이나 영웅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사는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인가? 역사 연구의 목적과 방법은 무엇인가?
위의 다섯 가지 질문이 곧 역사철학의 주요쟁점, 즉 과거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단지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의 근본원리나 이유에 대해 반성적으로 성찰하게 될 때 제기되는 주요한 쟁점이 된다. 이하에서 차례대로 그 내용을 간단하게 검토해 보기로 하자.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는가?
인류의 역사는 진보하는가. 아니면 퇴보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인류의 역사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하는 관점을 ‘진보사관(進步史觀)’이라 하고, 반대로 인류의 역사는 타락하고 퇴보한다고 하는 관점을 ‘퇴보사관(退步史觀)’ 또는 ‘종말론(終末論)’이라 한다. 제3의 관점도 있다. 역사는 일정한 운동법칙에 따라 변화하지만 그것이 진보도 아니고 퇴보도 아닌 순환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를 ‘순환사관(循環史觀)’이라 한다.
한편, 진보사관과 종말론은 역사가 일정한 방향을 향해서 나아간다고 전제하는 점에서 직선적(直線的)이라 할 수 있는데 기독교적 전통이 강한 서구에서 우세한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순환사관은 반복과 회귀라는 점에서 원환적(圓環的)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동아시아에서 우세한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캘린더의 구조만 보아도 금세 짐작할 수 있는데, 서구의 캘린더가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계속 집적되어 감에 반하여 동아시아의 캘린더는 60갑자(甲子)를 기준으로 계속 순환하고 있다.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역사가 일정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운동과 변화를 한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특히, 역사가 진보한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혹자는 신의 의지라 하고, 혹자는 인간의 이성이라 하고, 또 다른 혹자는 물질적인 생산 활동이라고도 한다.
역사를 추동하는 힘이 신의 의지라는 견해는 기독교 성서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나는데 서구역사는 르네상스를 계기로 신 중심의 역사에서 인간 중심의 역사로 전환된다.
한편 역사의 추동력이 인간의 이성이라는 견해는 서구가 근대화(近代化)하는 과정에서 확립한 계몽주의(啓蒙主義)의 역사관으로 특히 헤겔에 의해서 집대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헤겔은 자연뿐만 아니라 사회와 역사, 인간의 사고를 비롯하여 세계 전체가 변증법적으로 운동한다는 전제에서 ‘역사는 절대정신(絶對精神)의 자기전개 과정’이라고 역설하였다.
다른 한편,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辨證法)과 포이에르바흐의 유물론(唯物論)을 결합하여 변증법적 유물론, 나아가 사적 유물론을 수립하고, 정신이나 이성이 아니라 물질적 생산 활동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생산 활동을 해야 하며, 이 활동이 경제적 토대가 되어 정치, 법, 종교, 사상 같은 상부구조(上部構造)를 결정한다고 전제하고, 경제적 토대가 되는 생산양식(生産樣式)을 기준으로 삼아 인류의 역사가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출발하여 고대 노예제(奴隸制) 사회, 중세 봉건제(封建制) 사회, 근대 자본주의(資本主義) 사회를 거쳐 사회주의(社會主義) 또는 공산주의(共産主義) 사회로 발전하며, 이러한 발전법칙은 필연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역사 속에서 개인이나 영웅의 역할은 무엇인가?
혹자는 역사는 개인, 특히 영웅의 활동에 의해 창조된다고 하면서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개인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강조하고, 또 다른 혹자는 영웅과 같은 한 개인이 아니라 다수의 민중에 의해 역사가 창조된다고 주장한다. 전자의 견해를 ‘영웅사관(英雄史觀)’이라 하고, 후자의 견해를 ‘민중사관(民衆史觀)’이라고 한다.
한편, 역사의 운동법칙, 특히 그것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그 결과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인간의 의식적 활동은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하면서 영웅이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이 영웅을 낳는다는 주장도 있고, 역사의 운동 법칙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의식적인 활동이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촉매제 역할을 담당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성(理性)의 간계(奸計)’이라는 개념을 통해 보편적 이념으로서의 세계정신이 세계사적 인물이나 시대적 영웅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고 주장한 헤겔의 견해가 전자의 입장을 대변한다면, 자유란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발전법칙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면서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돕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주장한 마르크스의 견해가 후자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인가?
자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가능하듯이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도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대해, 랑케로 대표되는 실증주의적 역사관은 역사학도 경험적인 자연과학의 탐구방법을 동원하여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구분하고 오직 객관적인 사실판단만을 학문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에 대해 프랑크푸르트학파나 카와 같은 이론가들은 우리가 개별적 사건을 이해할 때는 전체에 대한 사전 지식을 전제로 하므로 거기에는 언제나 일정한 가치가 개입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와 역사에 대한 가치중립적인 객관적인 인식은 어렵다고 비판한다.
특히 카는 ‘과거에 발생한 모든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는 자신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중요한 것만을 역사에 기록한다. 따라서 역사란 역사가의 해석과 과거의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이다. 다시 말해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하면서, 역사 인식에 있어서 객관주의(客觀主義) 관점뿐만 아니라 주관주의(主觀主義) 관점도 아울러 비판하고 있다.
역사 연구의 목적과 방법은 무엇인가?
자연 현상 속에 들어 있는 보편적 법칙을 발견하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것이 자연을 탐구하는 목적이고 그러한 자연의 보편적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 동원하는 방법이 관찰과 실험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자연과학의 목적과 방법을 역사 연구의 목적과 방법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실증주의 역사학은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사회 현상에도 인과적 법칙이 존재하며, 이것은 관찰이나 실험, 비교와 같은 실증주의적 방법을 통해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해석학적 입장은 자연을 구성하는 생물이나 무생물과는 다르게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고 인간은 어떤 행위를 할 때 대부분 일정한 의도와 목적을 갖고 있으므로 사회와 역사의 탐구에서는 행위의 내적인 의도나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감정이입을 통한 추체험(追體驗)과 같은 해석학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 책, ‘헤겔&마르크스: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일찍이 독일 철학자 칸트에 의해 기획된 계몽주의적 역사관의 충실한 계승자인 헤겔과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하여 역사철학에서 제기되는 주요쟁점에 대해 비교적 균형 있게 서술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의 역사연구 추세에 대해서도 소개함으로써 입문자(入門者)들에게 중요한 공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부록으로 첨부된 지식인 지도는 단편적으로 흡수한 지식을 체계화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한편,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느끼게 되는 소회는 역시 역사학에 드리워진 마르크스의 짙은 그늘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현재까지 원시사회, 고대사회, 중세사회, 근대사회, 현대사회로 시대 구분된 한국사를 배워왔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구분은 마르크스가 생산양식을 기준으로 제시한 역사발전 단계설에 터 잡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러한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단계설은 불변의 진리인가. 마르크스 자신의 이론에 의하더라도 자본주의 다음 단계로서 역사발전의 최고 최후의 단계인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는 현실의 역사에서는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봐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서유럽의 역사발전과정을 분석하여 정립한 역사발전단계 이론을 그와는 전혀 역사적 토대가 다른 우리역사에 도식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우리가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수없이 주입받은 조선 중기 이후의 타조법(打租法)에서 도조법(賭租法)으로의 변화, 광작(廣作), 공인(貢人) 및 중인(中人)의 등장, 실학(實學)의 발달 따위 자본주의 맹아론(萌芽論)의 의미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결국 우리 역사 자체 내에서도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싹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제의 침략이 없었더라면 우리 자체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근대화(近代化)를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가들은 왜 그렇게도 구구하고 옹색한 논리로 자본주의 맹아론을 개발하고 보급하려고 기를 썼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일제가 퍼뜨린 식민사관(植民史觀), 특히 그 중에서도 정체성론(停滯性論)에 대한 반론의 혐의가 짙다. 그렇다면 그 정체성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일제 관변사학자들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제국주의적 침략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단계론을 이용하였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역사는 원시 공동체 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단계적으로 발전해 왔는데, 동아시아에서는 일본만이 막부체제(幕府體制)라는 중세 봉건 사회 단계를 거쳤기 때문에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고, 중국이나 조선은 그러한 중세 봉건 사회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고대 노예제 사회에 머무른 채 정체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중국이나 조선이 근대화하기 위해서는 근대화에 성공한 선진된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일본의 막부체제가 상당한 지방분권체제로서 서양의 중세 봉건사회와 유사한 역사발전 단계를 거친 것은 사실이고 우리 조선의 역사는 오히려 중앙집권적 경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온 것도 역시 사실이다. 과거제(科擧制)의 존부가 그러한 차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이 왜 굳이 마르크스가 제시한 역사발전단계에 따라서만 발전해야 하는가. 그리고 역사가 왜 굳이 발전 혹은 진보해야만 한다고 보아야 하는가.
발전(發展) 혹은 진보(進步)라는 개념은 도달해야 할 이상적인 어떤 상태를 전제해야만 가능한 것이고, 이것은 최후의 심판, 천국의 도래와 같은 기독교적 전통에 기반한 서구사회의 독특한 직선적인 역사관의 반영일 뿐인데, 이러한 관점을 왜 역사적 상황이 전혀 다른 동아시아에도 그대로 적용하여야만 하는 것일까.
이제 우리 역사도 자본주의 맹아론과 같은 대항논리(對抗論理)를 걷어차 버려도 되지 않을까. 잘못된 전제(前提)에 대해서는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를 갖다 대봐야 아무런 실익이 없는 것이다. 잘못된 전제 자체를 깨트려 버려야 제대로 된 논리전개가 가능한 것이다. 이제 우리 역사를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단계론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당당하게 복권(復權)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 역사학계의 당면한 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여기에 대해서는 김용옥의 ‘독기학설(讀氣學說)’에 그 논의가 자세하다].
2013년 7월 21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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