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선이다.
이쪽과 저쪽이 연결되지 않은 선은 그러므로 길이 아니다.
길을 나선다는 것은 그러므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간다는 것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간다는 것은
저쪽을 이쪽으로 당기거나 저쪽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이쪽과 저쪽이 완전히 지워지는 것은 아니므로
저쪽과 이쪽은 서로 포개지고 겹쳐지면서 새로운 이쪽을 만든다.
그리고 새로운 이쪽은 이전의 이쪽과 저쪽을 새로운 저쪽을 만든다.
결국 우리가 길을 나선다는 것은
새로운 이쪽과 새로운 저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이 모호하고 애매할수록 새로운 이쪽과 저쪽은
더욱 분명하고 명확해진다.
가덕도와 거제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는
희미한 운무 속에서 저쪽과 이쪽의 경계를 무화시켰다.
그 공간의 경계가 무화된 만큼 새로운 이쪽은 뚜렷한 시간의 경계로 일어섰다.
김영삼의 생가와 기념관에는
이 섬이 낳은 한 거물 정치인의 연대기적 시간이
박제된 채로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런데 그 박제의 대상이 아직 살아있으므로
그 박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박제였다.
거제어촌민속전시관에는
바다에 붙박인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이,
시간의 지층대별로 차곡차곡 화석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 화석이 되지 못한 현재는
바람을 기다리는 범선처럼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점심시간에 모습을 드러낸 발렌타인 30년산은
천성산 문학회의 오래된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30년을 넘긴 깊고 진한 향기가 식탁에 넘쳐흘렀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시간이 지우지 못한
이데올로기의 상흔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이기에 더욱 순도 높은 자양분을 우리 문학에 제공하고 있었다.
뉘라서 저 질 좋은 고령토로 백자 한 점 빚을까.
유치환 생가 앞마당에는
오래된 우물이 용도 폐기된 채 방치되어 있었고
돌담 옆에는 갓 피어난 모란이 함초롬히 이슬에 젖어있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五月)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三百)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전문)
시인의 모란은 봄이고
시인의 봄은 기다림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모란은 결국 기다림이다.
시인의 기다림은 그냥 기다림이 아니라
삼백 예순 날의 기다림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우리 시심(詩心)의 우물에 시(詩)가 가득 차는 그날까지.
삼백 예순 날을 하루같이.
그리고 문우(文友)여.
나머지 닷새는 술을 마시자.
술잔에 둥둥 뜬 시를 마시자.
2011년 4월 30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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