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온 대지가 꽃으로 가득하다. 4월로 접어들자 남쪽으로는 매화가 지고 벚꽃이 지천이다. 대기는 향긋한 꽃냄새와 달콤한 흙냄새가 뒤섞여 정신이 몽롱하다. 주말만 되면 벌렁거리는 가슴을 주체하기 힘들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학풍회 4월 간산에 나섰다. 간산지는 경북 의성. 서울이나 강원도 등 대처로 통하는 도로에서 한참이나 비껴나 있고 2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로 인해 울산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보기 어려운 오지(奧地)다.
산운마을에서 바라본 금성산과 비봉산
점우당(대문)
점우당(사랑채)
점우당(안채)
국도와 구불구불한 지방도를 번갈아 달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의성군 금성면에 위치한 산운(山雲)마을. 마을 동쪽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두 개의 봉우리가 우뚝하다. 두 개의 봉우리 중 북쪽이 금성산(金城山)이고 남쪽이 비봉산(飛鳳山)이다. 마을은 금성산에서 서쪽으로 부드럽게 흘러내린 산줄기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운곡당(대문)
운곡당(사랑채)
운곡당(안채)
운곡당(사당)
운곡당 담장 안에서 바라본 금성산
완만한 구릉을 등지고 남향을 한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즐비하다. 영천 이씨들의 집성촌으로 점우당(漸于堂), 운곡당(雲谷堂), 소우당(素宇堂) 등이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모두가 'ㅡ'자 또는 'ㄷ'자 형태의 사랑채와 안채가 모여 전체적으로는 'ㅁ'자 형태를 취하고 있고 동쪽 담장 너머로 강강(强剛)한 기운의 금성산이 올려다 보인다.
산운마을 앞으로 바라다 보이는 안산(案山)과 조산(朝山)
정지용의 시비
마을 앞으로 널찍한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수정계곡에서 발원한 물이 동에서 서로 흐른다. 길가에 세워진 정지용의 시비(詩碑)가 빈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 너머로 길고 평평한 둔덕이 펼쳐져 있고 그보다 더 먼 앞쪽으로 잘 생긴 문필봉(文筆峰)이 우뚝하게 솟아있다. 안산(案山)과 조산(朝山)의 형국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소우당(대문)
소우당(후원)
이 마을의 결정적인 흠은 서북쪽이 뻥 뚫려 있어 겨울철의 찬바람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이 정도 반촌(班村)이면 분명 그에 대한 비보책(裨補策)이 베풀어져 있을 법도 한데 시간에 쫓겨 자세히 살피지 못했다.
양조장
의성군 사곡면 화전마을에서는 산수유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했던가. 축제장으로 가는 길가에 양조장이 보이자 급하게 차를 세우고 우르르 몰려가 탁주를 사왔다.
산수유 군락지
산수유 군락지
산수유 군락지
축제장에는 수령이 오래된 산수유나무들이 병아리 발가락 같이 작고 앙증맞은 꽃들을 무더기로 피워내고 있었다.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회원들은 산수유 군락지의 절반도 돌아보지 않고 비닐하우스로 된 주보(酒堡)로 직행하였다. 미나리 파전에 갓 출시된 탁주를 들이켜니 그 맛이 꿀맛이었다.
점심식사
점심식사
산수유 축제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길가의 쉼터에서 점심을 먹었다. 믿는 구석이 있어 점심을 준비해 오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장금 누님과 청해당이 회원 모두가 먹고도 남을 만큼 넉넉한 식사를 준비해왔다. 평소에 맛볼 수 없는 진귀한 반찬들이 혓바닥을 즐겁게 하였다.
초짜 지관이 본 명당
식사 후 부른 배를 내밀고 주위를 산책했다. 조그만 연못을 낀 골짜기가 눈에 들어왔다. 연못 건너편 산자락 나지막한 곳에 한기의 무덤이 보였다. 좌우로 산자락이 따스하게 감싸고 있고 앞으로는 조그만 연못과 넓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품이 초짜 지관에게는 영락없는 명당이다. 복잡한 풍수이론을 떠나 척 봐서 편안하고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면 그곳이 바로 명당이 아닐까.
고운사(천왕문)
고운사(고불전)
고운사(孤雲寺)는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의상이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신라 말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대사와 함께 가운루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절 이름이 그의 호인 고운(孤雲)을 빌어 종래의 고운사(高雲寺)에서 고운사(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고운사(등운루)
고운사(종각)
그 후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는데 그 당시 사찰의 규모가 오법당십방사(五法堂十房舍)였다고 한다.
고운사(대웅전)
고운사 응진전 앞에 피어나는 목련
고운사(삼층석탑)
일제시대에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고 지금은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산재한 60여 대소사찰들을 관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세(寺勢)에 비해 그 이름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고운사(만세문)
고운사(연수전) - 조선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곳이라 한다.
고운사는 몇 개의 계곡이 합수(合水)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고 계곡과 계곡 사이의 여러 산줄기가 한 곳으로 모여드는 형상을 하고 있어 연꽃이 반쯤 핀 연화반개형(蓮花半開形)의 명당이라 한다.
고운사(극락전)
기표당 선배님 - 엘로드를 들고 지기를 탐사하고 있다.
과연 반시계방향으로 나한전, 대웅전, 약사전, 명부전, 극락전 등 주요 전각이 모두 화심(花心)을 향해 모여드는 산줄기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고, 그 산줄기의 형상이 모두 둥글둥글하여 꽃잎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그 산줄기들이 모두 급경사로 바로 치고 내려와 지기(地氣)가 부드럽게 순화되지 못하고 강강(强剛)한 기운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곳이 수도하는 스님들이 거처하는 절이라서 그렇지 일반인들은 그 강한 지기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
멀리 동북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금성산과 비봉산
햇살이 기울기 시작할 즈음 학풍회 5회 만주 선배님이 자신의 선산으로 일행들을 이끌었다. 이동하는 차안에서 잠깐 조는 바람에 그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는데 멀리 동북쪽으로 오전에 보았던 금성산과 비봉산이 보이는 야트막한 야산이었다. 산세는 부드러운데 뱀이 똬리를 틀은 듯 굴곡이 심하고 복잡하였다.
만주선배님의 선산 - 사진 가운데 소나무 숲 사이의 오목한 곳이다.
만주 선배님의 선산은 여러 겹으로 둘러쳐진 산줄기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형국이 마치 새 집 안의 알 같은 모양이었다. 옥상 고문님은 이 형국을 두고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나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이라 했다. 비봉귀소형은 멀리 보이는 비봉산을 염두에 둔 해석인 듯하다.
만주선배님 선산
만주 선배님
이현당 선배님
옥상 고문님
이현당 선배님은 이 자리가 지기가 들어오지 않아 그렇게 좋은 자리가 아니라고 했으나 옥상 고문님은 상당히 좋은 자리이긴 한데 밖으로 드러난 묘의 방향인 외향(外向)은 잘못 정한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경우 관이 실제 놓인 방향인 내향(內向)은 외향과 달리 정하는 일이 많다고 덧붙였다. 지기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관찰하는 견해와 형세론, 형국론, 이기론 등 풍수이론에 입각한 견해의 차이로 느껴졌다.
산을 내려오니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한낮의 대기가 식으면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낮이 지나면 밤이 찾아오듯 끝임 없이 변하고 순환하는 것이 세상만사의 이치인데 그 속에 백년도 못가는 부생(浮生)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무릇 하늘과 땅은 만물이 잠시 쉬어가는 여관(旅館)이요, 세월(光陰)은 영원히 쉬지 않고 지나가는 나그네(過客)이다. 이 덧없는 인생은 꿈같이 허망하니 즐긴다 해도 얼마나 되겠는가?
꽃 지는 봄밤. 잔치자리 벌여 꽃 사이에 앉아서 술잔을 던져 주고받으며 달에 취해 봄은 어떠할까.
2011년 4월 9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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