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1일 수요일. 내석고개에 차를 세우고 오전 10시 30분경 왼쪽으로 이어진 임도를 타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길은 산허리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며 조금씩 고도를 높였다.
지난주 세월의 시산제 산행코스는 너무나 마음에 드는 루트였지만 집안에 일이 있어 참석을 하지 못했다. 그 여파가 이번 주 내내 이어졌다. 몸은 무겁고 머리는 몽롱한데 사무실 일은 왜 그렇게 폭주하는지. 그리하여 3.1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산에 가기로 했다. 세월의 태풍 분타주에게 지난주 코스를 상세하게 물어보고 세월이 걸었던 루트의 반대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이른바 역발상이었고 내석고개까지 차로 올라감으로써 출발부터 고도를 높여놓고 시작하자는 계산이었다.
큰 고바위 없는 임도를 따라 쉬엄쉬엄 올라가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하니 높은 안테나가 설치된 컨테이너 건물이 나왔다. 길 양쪽으로 등산로가 이어져 있고 어느 쪽이 염수봉으로 가는 길인지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자전거로 산악하이킹을 하는 사람이 올라와 오른쪽 능선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염수봉이 나온다고 일러주었다. 완만한 산길을 5분쯤 올라가니 시계가 확 트이면서 해발 816m의 염수봉이 나왔다. 오전 11시 20분이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니 완만한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며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가늠되었다. 염수봉에서 북쪽으로 낙엽이 수북이 쌓인 완만한 능선을 따라 얼마쯤 내려가니 조금 전에 걸어 올라왔던 임도가 다시 나왔다. 임도는 산줄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평탄하게 이어졌다.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듯 팍팍했던 마음이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이 느낌! 이 여유! 이 편안함! 오직 산만이 줄 수 있고 산과 동화되고자 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이 축복! 내 마음은 때로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을 넘나드는 은성한 흰머리의 철인(哲人)이기도 했다가 어느 듯 장난기 가득한 개구쟁이 코흘리개 소년이기도 하였다.
산줄기가 팔뚝에 볼록 솟아오른 알통처럼 임도와의 고도차를 벌이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임도를 벗어나 다시 산길로 접어들었다. 10여분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니 길은 순해졌고 넓고 평평한 분지 사이로 완만한 내리막의 비단길이 펼쳐졌다. 길은 다시 만난 임도를 가로지르면서부터 완만한 오르막으로 바뀌었지만 그 부드러움은 계속 이어갔다.
해가 긴 여름날 수박 한 덩이 들고 와 여기 이 무성한 송림(松林) 아래 돗자리를 펼쳐 놓고 드러눕는다면, 그리하여 바캉스다 뭐다 번잡한 것들은 다 접어두고 여기 이 송림 속에서 독서삼매(讀書三昧)에 빠져 무상(無常)한 세월(歲月)을 희롱(戱弄)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아니 조만간 꼭 그렇게 해야겠다. 어디서든 돗자리 펴기 좋아하는 우리 집 딸아이가 무지 기뻐하리라...,
울창한 송림을 벗어나자 군데군데 암릉이 솟은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얼마 안 있어 해발 951m의 오룡산이 나왔다. 오후 1시 35분이었다. 점심때가 지나 제법 배가 고팠지만 바람을 피해 버너를 피울만한 적당한 장소가 없어 다시 북쪽으로 이어진 능선을 타고 30분쯤 더 걸었다. 그리고 길에서 조금 떨어진 후미진 곳을 찾아 버너로 떡라면을 끓이고 반주로 준비해간 1병의 소주를 비우며 늦은 점심을 먹었다.
알딸딸한 취기가 오르며 세상 시름이 눈 녹듯 사라졌다. 장부(丈夫)의 살이[生]가 이만하면 좋은 것을 여기서 무엇을 더 바래 그렇게도 애먼글면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산인(山人)과 속인(俗人)의 경계가 백지 한 장 차이도 안 되거늘 나는 언제쯤 먹고사는 일에서 놓여날까? 오! 밥벌이의 지겨움과 고단함이여...,
도도한 취흥(醉興)에서 깨어나기 싫어 미적거리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니 벌써 오후 3시. 북으로 길게 출렁거리며 줄기차게 이어지는 암릉길은 조금씩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그래도 산 아래로 펼쳐진 시원한 조망에 넋을 잃고 걷다 보니 어느새 해발 981m의 시살등에 도착하였다. 오후 4시 15분이었다. 염수봉에서부터 독특한 생김새로 이정표 역할을 했던 채이등이 바로 코앞이었다.
그러나 이제 신동대굴을 거쳐 하산을 해야 했다.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배내골 쪽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을 타고 15분쯤 내려갔다. 그리고 억새가 우거진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완만한 산허리길을 타고 20분쯤 더 내려가니 무성한 산죽(山竹)이 눈앞을 어지럽히더니 갑자기 커다란 바위 아래 널찍한 동굴이 나타났다. 말로만 듣던 신동대굴이었다.
굴 안은 생각보다 넓었고 바위로부터 방출된 지자기(地磁氣) 때문인지 영적인 기운으로 충만해 있었다. 동굴 한 구석에는 천정으로부터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 식수(食水)로는 부족함이 없을 듯싶었다. 누군가 굴 안에다 피라미드 모양의 작은 토굴(土窟)을 짓고 난방을 위한 구들까지 설치해 놓았다. 피라미드 모양의 삼각뿔은 그 중심에 우주의 영적인 기운을 응집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영적인 수련을 하는 사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디로 간 것일까? 토굴문은 조그만 자물쇠로 단단히 채워진 채 잠겨 있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얼마간 머물다 가고 싶었으나 벌써 해가 서산마루에 걸려 있었다. 훗날 금강경소초(金剛經疎抄)를 메고 용담(龍潭)을 찾아가는 덕산(德山)의 심정으로 이 굴을 다시 찾기로 하고 하산을 서둘렀다. 신동대굴을 나서자 길은 급격하게 고도를 낮추었다. 두 개의 석장(錫杖)이 없었더라면 무릎에 엄청난 무리가 갔을 것이다. 가파른 경사가 끝나면서 길은 어느 정도 완만해졌으나 곳곳이 바위투성이의 너덜지대라 하산 길임에도 많은 땀을 흘려야 했다. 지도상으로는 계곡이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는데 지쳐서 그런지 막상 걸어내려 오니 계곡을 벗어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저녁 6시 5분. 계곡에서 빠져 나와 내석고개에서부터 달려 온 임도를 다시 만났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였고 동녘하늘에는 보름에 가까운 달이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어둠에 젖어 임도를 따라 몇 구비의 산모롱이를 돌아 나오니 인가(人家)에서 새어나온 매캐한 연기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잠시 후 노란 나트륨등이 점점이 박힌 마을이 나왔다. 임도가 끝나고 도랑을 건너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에 이르니 저녁 6시 50분이었다. 누군가 밭에다 불을 놓아 잡초더미를 태우고 있었다. 정월 대보름 쥐불놀이의 신명(神明)이 가슴을 들뜨게 했다.
2007년 3월 1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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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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