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및 여행기

비급을 찾아서[배내고개-배내봉-간월산-신불산-영축산-함박등-청수중앙능선

월지 2007. 1. 29. 05:47

 

 

 

 

 

 

하늘은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사방은 저녁 으스름마냥 어두웠다. 은근한 오르막길이 호흡을 가쁘게 했다. 어떻게 해서든 선두를 따라붙으려 했지만 마음뿐 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 그에게는 선두조를 따라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신동대굴’ 때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신동대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는 영축산 자락의 어느 천연 석굴에서 오랫동안 수행을 한 끝에 도통(道通)하게 되어 신비한 능력을 지니게 되었는데 특히 축지법(縮地法)에 능하여 하루저녁에 한양을 오고 갈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능력을 너무 믿고 오만해져 나쁜 짓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로 인해 결국 자신의 은신처가 발각되고 불행하게 죽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신동대굴은 신동대가 오랜 수행을 통해 도통했던 바로 그 천연 석굴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신동대가 도통하여 축지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신동대굴’ 어딘가에는 축지법(縮地法)에 관한 비급(秘笈)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영남 일대 산림(山林)들 사이에 은밀하게 떠돌고 있었다.


세월이 좋아져 유마차(油馬車)를 타면 누구나 하루저녁에 한양을 오고갈 수 있는 시절이라 축지법이라고 하면 약장수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치부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유마차가 드나들 수 없는 험한 산릉(山陵)과 계곡(溪谷)을 누비는 것을 일과로 삼는 산림계(山林界)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산림계에서 축지법(縮地法)에 관한 비급(秘笈)을 손에 넣는다는 것은 산림계의 절대강자. 곧 산림계 전체를 아우르는 지존(至尊)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과 한 가지 말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산림계에서 나름대로 고수(高手)를 자처하는 자나 내로라하는 야심가(野心家)들은 모두 이 비급을 은근히 탐내고 있었다. 그런데 모처럼 세월방(歲月幇)에서 이 전설의 비급이 비장된 ‘신동대굴’을 답사한다는 방(榜)이 붙은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세월방은 그 수가 900을 헤아리는 만큼 다양한 공력(功力)의 문도(門徒)들이 포진해 있고 이러한 문도들의 다양성을 수용하기 위해 일부 험난한 구간의 경우 문도들의 공력(功力)에 맞게 선두조와 후미조를 분리하여 회전(會戰)을 운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회전의 경우 들머리인 배내고개부터 신동대굴까지는 실로 엄청난 거리와 난관(難關)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리하여 선두조만 신동대 굴을 답사하고 후미조는 중간지점에서 하산하는 것으로 계획이 잡혀 있었다. 


그는 마땅히 후미조에 속해야 할 공력의 소유자였다. 그의 호흡(呼吸)은 천박(淺薄)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의 근육(筋肉)과 다리는 너무나 무르고 얇았다. 어쩌면 그는 후미조에 마저 속하기 어려웠다. 그는 언제나 니고단(馜高丹)과 애고홀(碍苦忽)의 힘에 의지하고서야 겨우 후미조에서도 다시 후미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세월방에서 하지하(下之下)의 문도일 뿐이었다. 그는 세월방에 입문한 이래로 후미조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는 안분자족(安分自足)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후미조에서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누구보다 강렬한 호기심이 있었다. 그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감당할 수 없는 동경(憧憬)을 느꼈다.


그는 400년 전 축지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신동대라는 한 방외인(方外人)에 대해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이번 회전에서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선두조에 합류하여 신동대굴에 가고 싶었다. 비록 신동대가 남겼다는 축지법에 관한 비급을 손에 넣지 못해도 좋았다. 그가 수행하던 동굴에서 기인달사(奇人達士)의 숨결을 잠시라도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그러나 그와 선두조 사이에 가로놓인 공력의 차이는 너무나 큰 것이었다. 오전 9시 10분 배내고개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그는 선두조의 후미에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9시 30분 배내봉에 이르렀을 때는 선두조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배내봉에 올라서자 저 멀리 간월산과 그 너머로 신불산이 시커먼 먹장구름에 싸인 채 신비로운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선두조를 따라잡기 위해 내달았다. 한동안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졌다.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그는 때로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때로 뛰기도 하였다. 그러는 사이 그는 선두조에서 쳐진 단치(丹幟: ‘붉은 깃발’이라는 뜻으로 그가 붉은 옷을 자주 입는다는 데서 유래한 명칭. 일명 ‘단디’라고도 함 - 편집자 주)와 다보(多寶: ‘많은 보배’라는 뜻으로 그의 다재다능함에서 유래한 명칭. 일명 ‘터보’라고도 함 - 편집자 주)를 추월하였다.

 


하늘에서는 조금씩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갈수록 그 농도가 진해졌다. 어느새 눈은 길을 덮었고 선두조가 남긴 발자국마저 하얗게 지워버렸다. 들머리로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온 그는 간월산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지점에 이르러 기진맥진(氣盡脈盡)하였다. 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운기조식(運氣調息)에 들어갔다. 그리고 니고단을 태워 바닥난 내공(內攻)을 보충하였다. 그러는 사이 간신히 거리를 벌여 놓은 단치와 다보가 뒤따라왔다.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자 그는 단치, 다보와 함께 간월산을 치고 올라갔다. 중간에 3마리의 예쁜 견공(犬公)들이 산길을 배회하고 있었다. 산객(山客)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졸졸 따라오는 품으로 보아 주인(主人)을 잃은 듯했다. “저놈들을 살살 유인하여 공력(功力)을 보충하는데 쓴다면 점유이탈물횡령죄(占有離脫物橫領罪)가 성립하겠지, 손괴죄(損壞罪)는 불가벌적 사후행위가 되겠고...,” 입맛을 다시다가 직업은 못 속인다고 그 행위의 법률적 의미를 검토하다 보니 어느새 간월산 정상이었다. 오전 10시 40분이었다.

 

 

 

 


간월산 정상은 짙은 눈발과 운무로 사방이 온통 백색의 천지였다. 눈이 쌓여 미끄러운 바위 길을 조심조심 헤쳐 내려가자 저 아래로 간월재가 꿈을 꾸는 듯 몽롱하게 엎드려 있었다.

 


오전 11시 정각. 간월재에 도착하자 선두조의 파견대장인 쟁이 분타주가 선두조에서 쳐진 3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쟁이 분타주는 선두조의 천상백장 분타주와 후미조의 분타주이자 세월방 방주인 낭만광인과 부지런히 전서구(傳書鳩)를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낙오병 3인에게 선두조를 계속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적당한 곳에서 바로 하산할 것인지를 물었다. 3인이 모두 계속 선두조를 따라가겠다고 하자 쟁이 분타주는 한 쌍의 석장(錫杖)을 앞뒤로 번갈아 흔들며 의장월경대법[倚杖越傾大法: 지팡이에 의지해 오르막과 내리막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경공술(輕攻術). 고도의 내가공력(內家功力)을 갖춘 자만이 제대로 시전(施展)이 가능하다. 참고로 세월방 고수들은 모두 이 경공술의 달인들이다. - 편집자 주]을 시전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신불산을 향해 자취를 감춰 버렸다.

 

 

 


얼마 후 단치도 조금씩 시야에서 멀어졌다. 그는 다보와 함께 느린 걸음으로 그러나 한 번도 쉬지 않고 몽롱한 눈길을 걸으며 신불산을 치고 올랐다. 그는 이번 회전에서도 아무런 방한구(防寒具)를 착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머리카락에는 흘러내린 땀방울과 쌓인 눈이 얼어붙어 여러 가닥의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그래도 그는 별로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어지간해서는 방한모나 장갑을 착용하지 않았고 석장(錫杖)도 휴대하지 않았다. 그것은 산은 가급적 있는 그대로와 대면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持論)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귀와 손을 밖으로 드러내 놓아야 산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고 바람의 감촉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고 믿었다. 또 그는 그의 두 다리가 아무런 의지 없이 땅을 밟을 때라야 산과 제대로 소통(疏通)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만 그는 최근 여러 가지 산행사고를 목격한 이후로 석장(錫杖)에 대해서는 다소 유연한 태도를 가지기 시작하였다.

 

 


오전 11시 40분. 그는 다보와 함께 신불산 정상에 올랐다. 그들이 도착하자 먼저 와있던 선두조는 이미 점심식사를 마치고 객잔을 떠나고 있었다. 그와 다보는 먼저 도착한 단치와 함께 객잔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불순한 날씨에 추위를 피해 따뜻한 객잔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었다. 그들이 점심을 마치자마자 먼저 점심을 먹고 기다리고 있던 쟁이 분타주는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듯 영축산을 향해 쏜살 같이 달아났다. 그와 단치, 다보 등 낙오조 3인도 12시 정각 오후 산행을 시작하였다.

 

 

 

 


신불산을 지나 신불재를 내려오자 눈발은 그치고 서서히 시야가 트였다. 그러나 저 멀리 영축산은 여전히 검은 구름에 싸여 있었다. 그와 다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완만한 능선길을 걸었다. 산 아래로 넓게 펼쳐진 문명세계를 보면서 그는 매일 매일을 쓸데없이 바쁘게 보낸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산 아래에서는 언제나 바쁜 나날만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그는 왜 바빠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았다. 그렇게 그가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일상(日常)의 권태(倦怠)에 빠져 끝없는 시간의 바다 위를 표류할 때 그에게 자신과 솔직하게 대면하게 하고 마비된 감각을 회복시켜 주며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산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넓고 펑퍼짐한 신불평원은 누렇게 시든 억새를 이불삼아 따뜻하고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오후 1시 정각. 그와 다보와 단치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영축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도착하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쟁이 분타주가 “선두조와는 이미 1시간 정도의 거리차가 벌어져 있어 신동대굴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채이등 못 미쳐 청수중앙능선을 타고 하산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3인은 갑자기 맥이 빠져 버렸다. 특히 오로지 신동대굴을 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따라 왔던 그에게는 이제 산행의 목적이 상실된 것이었다. 갑자기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이제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게 된 3인은 영축산을 지나 샘터가 있는 안부에서 잠시 쉬었다. 다보가 한 초절정 산행고수(山行高手)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다보에 따르면, 그 고수는 지금까지 60년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온전한 목적을 가지고 서울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강원도 산골 오지만 200회 이상 답사했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강원도의 산에 대해서는 마치 자신의 손금을 보는 듯 환하게 들여다본다고 했다. 또한, 산행방식도 특이해서 그는 먹을 것과 잠잘 도구를 짊어지고 들어가 단 하루라도 산속에서 자고 와야 진정한 산행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60대가 가까운 나이에도 20~30Kg의 짐을 지고 7~8시간 동안 가파른 산길을 거뜬하게 걸어갈 수 있지만 굳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반문한다고 했다. 그는 1년에 한번 정도만 세월방 회전에 참가하지만 심심치 않게 방(榜)을 올려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고 했다. 그의 존명(尊名)은 대석(大石)이라 했다.

 


세월방에 그렇게 대단한 초절정 고수(高手)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내심 흥분되었다. 등잔불 아래를 보지 못한 자신의 아둔함에 놀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만한 고수가 가까이 있는데 굳이 400년 전 한 방외인(方外人)이 남겼다는 존재 자체도 의문스러운 비급(秘笈)을 찾는다는 것이 참으로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 고수의 입장에서 보자면, 먹을 것과 잠잘 도구를 짊어지고 산에 들면 그것으로 이미 넉넉한 것인데 굳이 땅을 오그라뜨려가면서까지 어디로 그렇게 급하게 갈 데가 있겠는가...,

 

 

 

 

 

 

 

 

 

 

 

 


그 이후 그의 발걸음은 느려지기 시작했고 전망 좋은 바위벼랑에 앉아 니고단을 태우며 눈 속에 묻힌 산의 정취에 빠져드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리하여 함박등을 지나고 백운암 갈림길도 지나 오후 2시 10분 청수중앙능선으로 들어선 이후부터 그는 낙오조에서조차 완전히 뒤로 쳐져 버렸다. 그리고 완급(緩急)을 반복하는 내리막길에 지친 그는 가지가 울창하고 잎이 싱싱한 한 적송(赤松)에 기대어 잠시 쉬다가 깜빡 졸음에 빠졌다.

 

 

 

 


그때 그의 눈앞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한 떼의 구름과 함께 나타나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그 비급(秘笈)은 찾았느냐?” 그가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그 노인은 간 데가 없고 멀리서 ‘왈왈’하는 개 짖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몽롱한 상태가 되어 다시 남은 길을 어기적거리며 걸어 내려왔다.

 

 

 

 


오후 3시 45분. 그는 하산주가 마련되어 있는 천지산장(天地山莊)에 도착하였다. 이미 선두조도 후미조도 모두 도착하여 있었고 몇 순배의 술잔이 돌고 난 후였다. 후래자(後來者)에게 내려지는 몇 잔의 벌주(罰酒)가 연거푸 그에게 주어졌다. 불콰하게 취기가 돈 그는 니고단을 태우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서산에 걸린 해가 소나무 가지를 벌겋게 물들이며 지고 있었다. 



2007년 1월 27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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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