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 동양

비파행

월지 2006. 9. 19. 16:33

 

 

 

 

琵琶行

비파행


        白居易

        백거이



潯陽江頭夜送客       심양강(潯陽江) 나루에서 밤에 손님을 보내려 하는데

심양강두야송객 

楓葉荻花秋瑟瑟       단풍잎 갈대꽃에 가을바람 쓸쓸하다.

풍엽적화추슬슬

主人下馬客在船      주인은 말 내리고 손님은 배에 타고

주인하마객재선

擧酒欲飮無管絃      술을 들어 마시려니 음악이 없다.

거주욕음무관현

醉不成歡慘將別      취해도 즐거움 없는 이별을 하려하니

취불성환참장별

別時茫茫江浸月      망망한 이별의 강에 달빛만 젖어 있다.

별시망망강침월

忽聞水上琵琶聲      문득 물 위로 비파 소리 들려오니

홀문수상비파성

主人忘歸客不發      주인은 돌아갈 일을 잊고 손님도 떠나가지 못한다.

주인망귀객불발

尋聲暗問彈者誰      그 소리를 찾아 조용히 누구인지 물으니

심성암문탄자수

琵琶聲停欲語遲      비파소리 그치고 대답이 없다.

비파성정욕어지

移船相近邀相見      배를 옮겨 가까이 다가가 볼 것을 청하며

이선상근요상견

添酒回燈重開宴      술 따르고 등 밝혀 다시 술자리를 벌인다.

첨주회등중개연

千呼萬喚始出來      부르고 또 청해서야 겨우 나타났는데

천호만환시출래

猶抱琵琶半遮面      비파를 안고 얼굴은 반쯤 가렸다.

유포비파반차면



轉軸撥絃三兩聲      꼭지를 틀고 현을 골라 두세 번 소리 내니

전축발현삼양성

未成曲調先有情      곡조(曲調)도 이루기 전 정(情)이 먼저 흐른다.

미성곡조선유정

絃絃掩抑聲聲思      줄 누르고 손끝으로 옮기니 비파소리 처량하고

현현엄억성성사

似訴平生不得志      평생에 못 펼친 마음속의 한(恨)을 호소하는 듯하다.

사소평생부득지

低眉信手續續彈      눈썹을 내리깔고 손에 맡겨 비파를 타니

저미신수속속탄

說盡心中無限事      마음속 숱한 사연을 모두 털어 놓는 듯하다.

설진심중무한사

輕攏慢撚撥復挑      가벼이 누르고 비벼 뜯고 다시 퉁기니

경롱만연발부조

初爲霓裳後六幺      처음은 예상곡(霓裳曲)이요 뒤는 육요(六幺)로다.

초위예상후육요

大絃嘈嘈如急雨      큰 줄은 소란스런 소나기 같고

대현조조여급우

小絃切切如私語      작은 줄은 가냘픈 속삭임 같다.

소현절절여사어

嘈嘈切切錯雜彈      소란함과 가냘픔 섞어서 타니

조조절절착잡탄

大珠小珠落玉盤      큰 구슬 작은 구슬 옥 쟁반에 떨어지는 듯하다.

대주소주락옥반

間關鶯語花底滑      때로는 꾀꼬리 소리가 꽃가지 사이를 흐르듯

간관앵어화저활

幽咽泉流氷下灘      때로는 샘물이 얼음 밑을 흐느끼며 흐르듯

유열천류빙하난

氷泉冷澁絃凝絶      찬물이 얼어붙듯 줄을 잠시 멈추니

빙천냉삽현응절

凝絶不通聲漸歇      멈추는 그대로 소리 또한 멎었다.

응절불통성잠헐

別有幽愁暗恨生      깊은 근심과 남모르는 원한(怨恨)이 일어나는 듯

별유유수암한생

此時無聲勝有聲      소리 없음이 있음보다 애절하다.

차시무성승유성

銀甁乍破水漿迸      갑자기 은병이 깨어져 술이 쏟아져 나오듯

은병사파수장병

鐵騎突出刀槍鳴      철기(鐵騎)가 돌진하여 칼과 창이 부딪쳐 우는 듯

철기돌출도창명

曲終收撥當心畵      곡이 끝나 비파 안고 한번 그으니

곡종수발당심화

四絃一聲如裂帛      네 줄이 한꺼번에 비단을 찢는 듯하다.

사현일성여열백

東船西舫悄無言      강 위의 모든 배들 고요히 말을 잊고

동선서방초무언

唯見江心秋月白      오직 강 가운데 가을달만 휘영청 밝다.

유견강심추월백 



沈吟放撥揷絃中      시름에 잠겨 있다 비파를 거두고

침음방발삽현중

整頓衣裳起斂容      의관을 정돈하고 앉음새를 고친다.

정돈의상기염용

自言本是京城女      스스로 말하기를 본시 서울 여자로

자언본시경성녀

家在蝦蟆陵下住      집은 하마릉(蝦蟆陵) 아래 있었다 한다.

가재하마능하주

十三學得琵琶成      열 셋에 비파 타기 모두 배우고

십삼학득비파성

名屬敎坊第一部      이름이 교방(敎坊) 제일(第一部)에 속해 있었다 한다.

명속교방제일부

曲罷曾敎善才服      곡을 끝내면 늘 스승이 감복하였고

곡파증교선재복

粧成每被秋娘妬      화장을 하고나면 미인들이 질투를 하였다 한다.

장성매피추랑투

五陵年少爭纏頭      오릉(五陵)의 젊은이들 다투어 선물을 주어

오릉소년쟁전두

一曲紅綃不知數      한곡에 붉은 비단 수없이 받았다 한다.

일곡홍초부지수

鈿頭銀萞擊節碎      자개 박은 은빛 빗을 박자 맞추다 깨뜨리고

전두은비격절쇄

血色羅裙飜酒汚      붉은 비단치마는 술로 얼룩졌다 한다.

혈색나군번주오

今年歡笑復明年      웃고 즐기며 한해 한해 보내느라

금년환소부명년

秋月春風等閑度      세월 가는 줄을 모르고 지냈다 한다.

추월춘풍등한도

弟走從軍阿姨死      동생은 군대 가고 양어머니마저 죽고

제도종군아이사

暮去朝來顔色故      어느덧 나이 들어 얼굴빛이 변하니

모거조래안색개

門前冷落車馬稀      문 앞은 쓸쓸하고 찾는 손님도 드물어

문전냉락거마희

老大嫁作商人婦      늙어서 어쩔 수 없이 상인의 아내가 되었다 한다.

노대가작상인부

商人重利輕別離      그러나 상인(商人)은 이익보다 이별을 가벼이 여겨

상인중리경별리

前月浮梁買茶去      지난달 부량으로 차를 사러 갔다 한다.

전월부량매다거

去來江口守空船      강어귀에 왔다 갔다 빈 배만 지키자니

거래강구수공선

繞船月明江水寒      배 비추는 밝은 달에 강물만 차갑고

요선월명강수한

夜深忽夢少年事      밤이 깊어 문득 어린 시절 꿈을 꾸면

야심홀몽소년사

夢啼妝淚紅欄干      꿈에도 울어 화장 섞인 눈물이 얼굴을 적신다 한다.

몽제장루홍난간



我聞琵琶已嘆息      비파 소리 듣고 이미 탄식 했는데

아문비파이탄식

又聞此語重喞喞      여인의 말 듣고 나니 다시 한숨이 난다.

우문차어중즉즉

同是天涯淪落人      우리는 같은 천애(天涯)의 불행한 신세

동시천애윤락인

相逢何必曾相識      상봉(相逢)이 어찌 아는 사이만의 일이랴...,

상봉하필증상식

我從去年辭帝京      나는 지난해에 서울을 떠나

아종거년사제경

謫居臥病潯陽城      심양성(潯陽城)에 유배와 병들어 누워 있다오.

적거와병심양성

潯陽地僻無音樂      심양 땅은 외지고 음악도 없어

심양지벽무음악

終歲不聞絲竹聲      한해가 다가도록 악기소리 한번 못 들었다오. 

종세불문사죽성

住近盆江地低濕      분강(盆江) 가까이 살다보니 땅이 낮고 또 습해

주근분강지저습

黃蘆苦竹繞宅生      갈대와 대숲만 집을 둘러 무성하다오.

황려고죽요택생

其間旦暮聞何物      그 간 아침저녁 들은 소리라고는

기간단모문하물

杜鵑啼血猿哀鳴      피맺힌 두견새와 원숭이의 슬픈 소리뿐...,

두견제혈원애명

春江花朝秋月夜      봄 강의 아침 꽃과 가을 밤 달빛 아래

춘강화조추월야

往往取酒還獨傾      가끔 술을 얻어 홀로 잔을 기울인다오.

왕왕취주환독경

豈無山歌與村笛      어찌 산의 노래와 초동의 피리 소리 없을까마는

기무산가여촌적

嘔啞嘲哳難爲聽      조잡하고 시끄러워 들어주기 어렵다오.

구아조찰난위청

今夜聞君琵琶聲      오늘 밤 그대의 비파 소리 들으니

금야문군비파성

如聽仙樂耳暫明      신선의 음악을 들은 듯 귀가 잠시 맑았다오.

여청선악이잠명

莫辭更坐彈一曲      부디 사양 말고 다시 앉아 한 곡 들려주시오

막사갱좌탄일곡

爲君飜作琵琶行      내 그대 위해 비파(琵琶行)을 지으리다.

위군번작비파행

感我此言良久立      내 말에 무엇을 느꼈는지 한 동안 서 있더니

감아차언양구립

卻坐促絃絃轉急      물러앉아 줄을 울리니 곡조는 점점 더 급해진다.

각좌촉현현전급

凄凄不似向前聲      슬프기 그지없어 앞의 곡과 다르니

처처불사향전성

滿座重聞皆掩泣      듣는 모든 사람 소리 죽여 흐느낀다.

만좌중문개엄읍

座中泣下誰最多      그 중 누가 눈물을 가장 많이 흘렸을까?

좌중읍하수최다

江州司馬靑衫濕      강주사마(江州司馬)의 푸른 적삼이 흠뻑 젖어 있다.

강주사마청삼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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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 [白居易, 772~846]

자 낙천(樂天). 호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 본적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 낙양(洛陽) 부근의 신정(新鄭) 출생. 이백(李白)이 죽은 지 10년, 두보(杜甫)가 죽은 지 2년 후에 태어났으며, 같은 시대의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병칭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 때부터 시짓는 법을 배웠으며 15세가 지나자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시재를 보였다. 대대로 가난한 관리 집안에 태어났으나, 800년 29세로 진사(進士)에 급제하였고 32세에 황제의 친시(親試)에 합격하였으며, 그 무렵에 지은 《장한가(長恨歌)》는 유명하다.


807년 36세로 한림학사가 되었고, 이듬해에 좌습유(左拾遺)가 되어 유교적 이상주의의 입장에서 정치 ·사회의 결함을 비판하는 일군의 작품을 계속 써냈다. 《신악부(新樂府) 50수》(805)는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811년 40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에 어린 딸마저 잃자 인생에 있어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불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814년 태자 좌찬선태부(左贊善太夫)에 임용되었으나, 이듬해에 일찍이 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시가의 대상이 되었던 고급관료들의 반감을 사서 구강(九江)의 사마(司馬)로 좌천되었다. 그 곳에서 인생에 대한 회의와 문학에 대한 반성을 거쳐 명시 《비파행(琵琶行)》(816)을 지었다. 818년 충주자사(忠州刺史)가 되었으며, 임기를 마치고 장안(長安)에 돌아오자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를 피하기 위하여 822년 자진해서 항주자사(杭州刺史)가 되었다. 항저우의 아름다운 풍광(風光)에 촉발되어 시작(詩作)은 계속되었고, 문학적 지기(知己)로서 트고 지내던 원진(元拂)과 만나게 되어 그것을 계기로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50권, 824)을 편집하였다. 825년 소주자사(蘇州刺史)로 전임하였으나 827년에는 중앙으로 불리어 비서감(秘書監)에 임명되었다.


829년 58세가 되던 해 뤄양에 영주하기로 결심, 하남부(河南府)의 장관이 되었던 때도 있었으나 대개 태자보도관(太子補導官)이라는 명목만의 직책에 자족하면서 시와 술과 거문고를 삼우(三友)로 삼아 ‘취음선생’이란 호를 쓰며 유유자적하는 나날을 보냈다. 831년 원진 등 옛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자 인생의 황혼을 의식하고 낙양 교외 용문(龍門)의 여러 절을 자주 찾았고 그 곳 향산사(香山寺)를 보수 복원하여 ‘향산거사’라는 호를 쓰며 불교로 기울어졌다. 이에, 문학에 대한 충동도 번뇌로 보여서 참회하는 입장에서 ‘광언기어(狂言綺語)’의 문집인 《유백창화집(劉白唱和集)》 5권, 《백씨문집(白氏文集)》 60권을, 다시 65권, 67권을 834∼839년에 걸쳐 마음의 증표로서 연고 있는 사찰에 봉납하였다. 842년 71세 때 형부상서(刑部尙書)의 대우로 퇴직하였는데, 《백씨문집》은 70권에 이르렀다. 그 뒤로도 ‘광영(狂詠)’은 계속되었고 정부의 불교탄압정책을 풍자하는 작품을 통해서 자기 시대의 종말을 예감하고 인생의 마무리로서 75권의 전집을 편정(編定), 그것이 완성된 이듬해 그 생애를 마쳤다. 이 밖에 시문(詩文)을 짓는 편의를 위해서 고사성어를 모은 《백씨육첩사류집(白氏六帖事類集)》 30권도 있다.


그 긴 생애 동안에 그의 문학은 자주 변모하였다. 즉, 젊은 날의 낭만주의적인 경향은 지적인 빛을 띠며 이상주의적 입장으로 옮겨갔고, 문학의 존재의의를 주장하며 정치와 사회를 비판하다가 이윽고 정치나 사회 가운데서 개인을 발견하여 자기의 내면을 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다시 개인에 비추어 널리 인간의 생활 자세를 추구하여 인생의 지혜를 표상하는 문학을 지향하기도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정형(定型)의 한계적 조건하에서 언어의 온갖 기능을 다 구사하는 ‘창화(唱和)’라는 새로운 형태의 창조에 힘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항상 그 속에 일관하고 있던 것은, 문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며 생활의식이나 생활감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이었다. 따라서 제재는 경험적이고 언어는 일상성을 띠며, 발상은 심리의 자연에 따르고, 구성은 논리의 필연에 따르며, 주제는 보편적이어서 ‘유려평이(流麗平易)’한 문학의 폭을 넓혀 당(唐) 일대(一代)를 통하여 두드러진 개성을 형성하였다.


그의 생존시에 이미 그의 시는 민중 속에 파고들어, 소치는 아이나 말몰이꾼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리고, 배나 절의 기둥이나 벽에 써 붙여지기도 하였으며, 멀리 외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시는 한국에도 일찍부터 전해져 널리 애송되었다. 현재 전하는 것은 《백씨장경집》 75권 가운데 71권이 있고, 《백향산시집》 40권도 있다. 현존하는 작품수는 3,800여 수이고, 그 중에서 《비파행》 《장한가》 《유오진사시(遊悟眞寺詩)》는 불멸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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