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및 여행기

살다보면...,[장연리-육화산-구만폭포-통수골-구만산장 산행기]

월지 2006. 7. 24. 10:49

 

 

 

오랜만에 나간 태화강 둔치는

자욱한 안개에 싸여 후텁지근하였다.


반가운 얼굴들도 많은 반면 낯선 얼굴들도 적지 않다.

세월은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아도 끝없이 변화하는 것을 실감한다.


태화강 둔치에는 26인의 세월님들이 나오셨다.

무더운 날씨에 비하면 적지 않은 인원이다. 오늘의 코스가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방증이리라.

 


딩딩당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석남터널 휴게소에 오르자 자욱했던 안개가 걷혔다.

긴 장마기간 중 오랜만에 보는 푸른 하늘이다.

 


오전 8시에 태화강 둔치를 출발한 딩딩당이

밀양에서 계수나무님 일행 2명을 태우고 산행 들머리인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였다.


간단하게 몸을 풀고 바로 출발이다.

산 입구에 이르기까지는 전형적인 농촌들판이다.

 

 

 

 


 

넓고 반듯반듯하게 구획된 논에는

푸른 벼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가지런하게 말뚝이 박혀 있는 밭에는

굵고 실(實)한 고추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세월님 중 한분이 “이 동네에 과부들이 많아서

고추들이 저렇게 굵고 실한 것 같다“고 은근한 농담을 던진다.


산으로 들어서자 지면(地面)으로부터

후끈거리는 습기가 콸콸 쏟아져 나오고

온몸은 금세 비칠거리는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그렇게 산허리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자

산 아래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지고 간간이 바람이 불어왔다.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산은 조금씩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고,

오전 11시 45분 오늘 산행의 한 정점인

육화산(六花山, 해발 675m)에 이르렀다.


거기서 잠시 쉴 틈도 없이

곧바로 10여분쯤 더 진행하여

제법 넓은 공터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오후 12시 25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하니

오전의 오름길과는 달리 키 큰 소나무와 잡목 아래로

부드럽고 완만한 비단길이 펼쳐졌다.


모두들 정신없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요즘 세월에서 ‘짐승’이라는 말이 유난히 자주

등장하고 있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주눅들 월지(月池)가 아니지....,


가파른 고바윗길은 힘들어서 천천히,

완만한 비단길은 빨리 가기 아까워서 천천히,

이런 저런 핑계로 한결같이 쉬엄쉬엄,

그리하여 후미조의 영원한 터줏대감이 월지 아니던가...,


쉬엄쉬엄 걸으며 “이 무더운 날씨에 능선을 빙빙 돌아

별 볼품도 없는 구만산(九萬山)까지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를 품고 있는데, 뒤따라오시던 낭만대장님께서 후미조 중 일부는

갈림길에서 바로 구만폭포로 내려간다고 하시지 않는가...,


속으로 은근히 쾌재를 불렀다.

슬그머니 뒤쳐져 모모과(科)*에 편승하려하는데,

낭만대장님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셨다.


직접적으로 말씀은 못하시지만

못마땅한 표정이 얼굴에 가득하니

내 마음도 편치가 않았다.


그러나 “산에 와서까지 어떤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 놓고

돌진 앞으로 식의 산 아래 방식을 답습하지는 않겠다”는

산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꿀 마음은 추호(秋毫)도 없다.


만약, 세월에서 그런 식의 산타기를

강요한다면 나는 세월에서 미련 없이 탈퇴하리라...,


나는 세월이 그의 존립(存立)에 “명백(明白)하고 현존(現存)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을 초래하지 않는 한, 어떠한 잡놈(?)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세월에 잡놈이 많다는 것은 세월에 그만큼의 여유(餘裕)와 자산(資産)이 많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가 하산주(下山酒)를 마실 때, “세월아! 네월아!”를 외치는 것도 바로 이런 여유의 표시가 아니던가. 

 

 

 


 

오후 1시 30분 갈림길에 도착하여 조금 쉬다가

낭만대장님, 선바위님, 백합님, 물망초님, 월지 등 5인은

바로 하산을 시작하여 2시 40분 구만폭포에 도착하였다.

 


구만폭포(九萬瀑布)!

좌우로 깎아지른 바위벼랑을 거느린 채

흰 비단이 바람결에 휘날리듯 40여 미터에 이르는

하얀 물줄기가 길고 부드럽게 걸려 있었다.


3인의 남자들은

모두 구만폭포 아래

검푸른 소(沼)로 뛰어들었다.


서늘한 한기가 온몸을 감쌌다.


그러나 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유량이 너무 많아 가까이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거기다 구경꾼이 너무 많았다.

못에서 물이 빠지면 모든 고기들이 물을 찾아 한 곳으로 모여 들 듯

근처의 산에 오른 사람들은 하산하면서 대부분 구만폭포를 경유하고 있었다.


몇 번 자맥질을 하고는

바위에 걸터앉아 나중에 온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웠다.

 

 

 


오후 3시 10분 구만폭포를 출발하여

길고 완만한 계곡을 타고 내려 왔다.


계곡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이어지는 하산길에는

곳곳에 아기자기한 소(沼)와 담(潭)이 펼쳐져 있었다.


지도상으로는 계곡이 꽤 길어 보였으나,

막상 걸어내려 오니 금방 끝이 나버렸다.

 

 


그리하여 오후 4시 10분경 하산을 끝내고

구만산장에서 멍청히 앉아 구만산으로 간

본대(本隊)를 기다려야 했다.  


먹음직스러운 하산주를 바로 옆에 두고서도

불편한 대장님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자니 여간 고역(苦役)이 아니었다. 


거기다 배는 또 왜 그리 고픈지...,

바로 옆에서 폴폴 풍겨 나오는 통닭냄새에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다시 1시간 정도를 기다리자 선두조가 도착하기 시작하였고,

낭만 대장님은 그런 내 심정을 어떻게 아셨는지(?) 후미조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산주(下山酒)의 개시를 선언하셨다.


튀겨진 통닭이 어디로

날아 가버리는 것도 아닐진대

허겁지겁 닭 날개부터 물어뜯었다.


너무 급하게 먹은 탓일까,

후미조가 도착하고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될 무렵에는

술을 몇 잔 마시지 않았는데도 머리가 어질어질하였고

너무 배가 불러 자리에 앉아 있는 것조차 불편하였다.


어쩔 수 없이 먼저 일어나

딩딩당에 올라 자리를 잡고

몽롱한 명정상태(酩酊狀態)에 빠져 들었다.


그 이후 어떻게 울산까지 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태화동 둔치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득 내가 오늘 산에 가기는 갔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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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과(科): 낭만대장님 말씀이 예전에 모모님이 산행도중 중간에 잘 샜다고 하셨다.


 

 

2006.  7.  22.

달은 못을 비추는 거울 月池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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