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 동양

단하 천연

월지 2006. 3. 28. 20:43
 

단하(丹霞: 739 ~ 824)의 고향 본관 성씨에 대해서는 분명한 기록이 없다. 법명은 천연(天然)이다. 어릴 때 유교(儒學)과 묵자(墨子)를 공부하여 구경(九經)에 통달하였다고 한다.


처음으로 방(龐)거사와 함께 과거시험에 응하려고 낙양(洛陽)으로 가는 도중에 행각(行脚) 하는 스님을 만났다. 그와 차 한잔을 마시게 되었을 때 스님이 물었다.


"수재(秀才)는 어디로 가시오?"


"과거를 보러 갑니다."


"공부가 아깝구나! 어째서 부처를 뽑는 곳으로 가지 않는가?"


"부처를 어디서 뽑나요?"


"강서(江西)에 마조(馬祖)께서 지금 생존하시어 많은 설법을 하고 계시는 데 도를 깨친 이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소. 그 곳이 부처를 고르는 곳이오."


두 사람은 즉시 길을 떠나 마조 선사를 뵙고 절을 하니 마조선사가 말했다.


"여기에서 남악(南嶽)으로 7백리를 가면 석두희천(石頭希遷) 장로가 돌 끝에 앉아 계신다. 그리로 가서 출가하라."


단하가 그 날로 길을 떠나 석두 선사를 찾아가니 석두 선사가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강서에서 왔습니다."


"무엇하러 왔는가?"


단하가 마조 선사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니 석두 선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엌에서 반찬이나 만들어라."


부엌에서 일을 한 지 2년이 지났다. 하루는 석두 선사가 '내일 아침에 단하의 머리를 깎아 중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날 저녁 동자(童子)들이 문안을 드리러 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


"들어라. 내일 아침 공양을 마친 뒤 법당 앞의 한 무더기 풀을 깎아야겠다."


이튿날 동자들은 제각기 낫과 괭이를 들고 나왔으나, 단하만은 머리 깎는 칼과 물을 가지고 와서 석두 선사 앞에 꿇어앉았다. 선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그의 머리를 깎아 주었다.


머리를 깎고 나니 단하의 정수리가 봉우리처럼 볼록 솟았는데 석두 선사가 이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천연스럽구나."


단하는 머리를 다 깎고 나서 선사에게 절을 하면서 말했다.


"이름을 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석두 선사가 물었다.


"내거 언제 이름을 지어 주었느냐?"


"조금 전에 '천연'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에 석두 선사는 더욱 그를 사랑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었고, 마침내 천연은 석두 선사의 법을 잇게 되었다. 이로부터 단하는 생각을 활짝 풀어 놓고 행각 길에 올라 자유자재한 생활을 했다.


단하가 낙양에 이르러 혜충(慧忠) 국사를 뵈러 찾아갔더니 국사의 시자가 말했다.


"계시기는 하지만 손님을 대하지는 않습니다."


"퍽 깊고 먼 곳에 숨어 계시는구나."


"불안(佛眼)으로 봐도 볼 수는 없습니다."


"용은 용의 새끼를 낳고, 봉은 봉의 새끼를 낳는구나!"


단하가 돌아간 뒤 시자가 이 일을 국사에게 아뢰자 국사는 시자를 후려쳤다.


단하가 풀을 베다가 독사를 만났다. 독사가 머리를 들고 단하에게 덤벼들려고 하자, 단하는 낫을 들어 독사의 머리를 냉큼 베어 버렸다.


같이 풀을 베던 스님이 그것을 보고,


"너무 거칠구나."


하니 단하는 그 스님에게 윽박지르듯이,


"내가 거치냐? 네가 거치냐?”


단하는 등주(鄧州)의 단하산(丹霞山)에 머물렀는데, 산이 워낙 높고 험준해서 찾아오는 이가 별로 없었다. 하루는 어떤 스님이 단하를 찾아오다가 산 밑에서 단하를 보자 얼른 물었다.


"단하산이 어디 있습니까?"


단하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검푸르게 솟은 저 산이오."


"바로 저 산입니까?"


이에 단하가 답했다.


"진짜 사자는 한 번 퉁기면 이내 뛰느니라."


단하가 행각을 하다가 날이 어두워 낙양의 혜림사(慧林寺)에 잠시 몸을 의탁했다. 겨울인데다 그날따라 날이 매우 찼다. 그러나 그 절의 원주가 너무나 구두쇠라서, 행각승인 단하의 방에는 군불하나 때지 않고 그냥 자라고 했다.


하도 방이 추워서 단하는 바깥으로 나와서 땔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땔 나무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법당에 가보니 목불(木佛)이 있었다. 그래서 단하는 목불을 꺼내다 쪼개어서 불쏘시개로 썼다.


연기 냄새를 맡은 원주가 단하의 방에 와서 물었다.


"무얼 때시오?"


"목불을 쪼개어 때고 있소."


그러자 원주는 펄쩍 뛰며 고함을 쳤다.


"아니 목불을 때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소?"


그러자 선사는 천연스럽게 말했다.


"부처님을 다비해서 사리를 얻으려는데 무엇이 잘못되었소?”


원주는 더욱 화를 내며 달려들었다.


"아니 나무로 만든 부처에 무슨 사리가 있단 말이오?"


그러자, 단하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리도 안나오는 부처가 무슨 부처라고, 펄쩍 뛰고 그러시오?"


그러자 원주의 혀가 쑤욱 빠졌다고 한다.


이 일을 두고 어떤 스님이 진각(眞覺) 대사에게 물었다.


"단하는 목불을 태웠고 그 절의 원주는 펄펄 뛰었는데 누구의 허물입니까?"


진각대사가 말했다.


"원주는 부처만을 보았고 단하는 나무토막만 태웠느니라."


어느 날 단하가 마곡 선사와 함께 산에 갔다. 물이 급히 흐르는 골짜기에서 마곡이 불쑥 물었다.


"열반이란 무엇일까?"


단하는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바쁘다 바빠!"


"무엇이 바쁘단 말인가?"


단하가 태연하게 말했다.


"저 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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