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및 여행기

[스크랩] 산은 포효하고 있었다[자연휴양림-헬기장-배너미재-지룡산-운문사 산행기]

월지 2005. 11. 28. 18:11


태화강의 일출

 

 

날씨는 계절을 잊은 듯 맑고 포근하였다.

아침 해가 태화강을 붉게 물들이며 반사되고 있었다.

 

오늘은 딩딩당 대신에 조금 더 큰 이화가

세월 27인을 태우고 8시 정시에 태화동 공영주차장을 출발하였다.

 

 

 


운문산 자연휴양림

 

 



산행 시작

 

 

이화는 상북 궁근정에서

키 크고 인상 좋아 보이는 시나브로 님을 태우고

운문고개를 넘어 운문산 자연휴양림 입구에 도착하였다.

 

잠시 몸을 풀고 8시 55분 산행이 시작되었다.

 

 

 

너덜지대

 

자연 휴양림을 지나 계곡을 따라

30분 정도 가파른 너덜지대를 오르니

거대한 병풍같은 바위 절벽이 눈앞을 가로 막았다.

 

 

 


용미폭포(하얗게 보이는 것은 얼음)

 

 

용미폭포(龍尾瀑布)였다.

폭포 밑바닥에는 얼음조각들이 하얗게 흩어져 있었다.

 

간밤에 이무기가 거세게 용틀임을 하고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떨어뜨린 비늘 같았다.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

완만한 산허리 길을 따라 걸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이 바스락 거렸고,

물기를 머금은 낙엽 썩는 냄새가 봉긋이 피어올랐다.

몸은 점점 부드러워지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부처바위

 

 

가을의 정장을 모두 벗어버린 산은

회색빛으로 고즈넉하게 웅크리고 있었다.

 

모든 번뇌(煩惱)의 불이 꺼지고

청정한 열반(涅槃)의 정적(靜寂)이 피어올랐다.

 

산허리길이 끝나고 능선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회색의 참나무 숲 사이로 푸른 소나무 세 그루를

품안에 안은 채 홀로 우뚝 서 있는 바위가 나왔다.

부처바위라고 하였다.

 

부처바위를 지나자

길은 경사가 급해지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이마에서부터 구슬땀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준비해간 2리터짜리 생수를 벌써 반 이상 마셨다.

 

지난 몇 주간의 방탕한 생활이

회오(悔悟)의 빛으로 물들었다.

 

실망과 함께 몇 개의 산줄기를 지나친 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라 얼마쯤 걸어가니

작은 헬기장이 나오고 길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오른쪽은 쌍두봉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쪽은 배너미재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고사목과 청도 귀바위

 

 


헬기장에서 주위를 조망하였다.

 

오른쪽으로 문복산과 옹강산이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왼쪽으로 상운산, 가지산,

북릉 귀바위, 아랫재, 운문산, 억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희미하고 부드러운 실루엣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루금 아래로 갈라져 나온 수 십 개의 골짜기들...,

거무스럼하다 할까 가믈하다 할까. 유현(幽玄)하다 할까 현묘(玄妙)하다 할까.

 

도저히 필설(筆舌)로는 담을 수 없는

신비스럽고 그윽한 어떤 기운(氣運)에 싸인 채

산은 포근하게 잠들어 있었다.

 

옛 사람들이 신선이 사는 곳이라고 일컫는

동부(洞府)가 바로 저런 데가 아닐까 싶었다.

 

 

 


배너미재

 

 

배너미재로 내려오는 길은

급격하게 고도를 낮추었다.

 

11시 20분 배너미재에 도착하였다.

대장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후미조의 라기님, 물망초님, 위생사님,

학소대님, 홀로바우님, 시나브로님 등이 모두 모여 다시 급격하게 고도를 높이는 산비탈을 올랐다.

 

이때부터 시나브로님이

단연 이채(異彩)를 띄기 시작했다.

 

후미에서 쉬엄쉬엄 오시던 시나브로님이

비탈진 오르막길을 그 긴 다리로 시나브로 치고 오르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수 십 년간 쌓아온 내공(內攻)이 실린 한 초식(抄式)을 보는 듯 하였다.

 

 

 


사리암 삼거리

 

 



고사목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동안 고도를 높이고 나니

아담한 돌탑이 나오고 길은 세 갈래로 갈라졌다.

왼쪽은 사리암으로 가는 길이라 하였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몇 개의 고사목을 지나자 갑자기

조그만 공터의 헬기장이 나왔다.

 

시각은 정확히 12시였다.

 

앞서 갔던 세월님들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계절이 겨울에 가까이 갈수록

세월의 식사시간은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식사는 30분만에 끝이 났다.

터보님은 간밤에 마신 술이 아직도 깨지 않았다며

밥을 거의 드시지 못했다. 제대로 먹지도 않은 상태에서

6시간 이상을 걸을 수 있는 그 체력은 아마도 평소에 축적해 둔 뱃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 멀리 보이는 지룡산(마치 거대한 용이 엎드리고 있는 듯)

 

 


식사 후 느긋한 걸음걸이로

얼마를 더 나아가니 저 멀리로

오늘의 산행목표 지점인 지룡산(地龍山)이 보였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헤아려 보니

왜 산 이름을 지룡(地龍)이라 하였는지

넉넉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좌우로 구불구불 휘감아 돌면서

아래위로 물결처럼 요동치는 산릉(山陵)이

저 멀리 지룡산까지 이어지며 마치 한 마리 거대한 용이 길게 엎드려 있는 듯한 형국이었다.

 

산릉에서 왼쪽으로 뻗어 나간

골짜기 사이로 내원사가 포근하게 누웠고,

저 앞 지룡(地龍)의 옆구리쯤에 북대암이 단정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넓은 개활지(開豁地) 위로

성냥갑을 반듯반듯하게 세워 놓은 듯한 운문사가 질펀하게 펼쳐져 있었다.

 

 

 

 
주단을 깔아놓은 듯한 낙엽길

 

 


길은 가는 새끼줄마냥 꼬불거리다가

비포장의 시골길처럼 덜컹거리기도 하고

주단을 펼쳐 놓은 듯 부드러운 낙엽길이 이어지기도 하였다.

 

후미조의 세 미녀

라기, 물망초, 위생사는

되살아오는 처녀 적 꿈을 이기지 못하고

낙엽에 엎드려 한 포즈를 취하셨다.

 

특히 라기님은 처음에는 잔뜩 빼다가

세 명이서 같이 찍는다고 하니까 잽싸게 포즈를 잡는 품이

정말 수줍은 처녀 같았다.

 

하기야 요즘같이 되 볼가진 세상에

그렇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처녀가 있을지는 의심스럽지만...,

 

 

 


지룡산 정상

 

 

오후 2시 정각

후미조 전원이 지룡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느닷없는 도착이었다.

그만큼 정상은 평범하였다.

 

간단하게 기념촬영을 하고

왼쪽의 가파른 길을 타고 하산하였다.

 

지그재그로 가파르게 이어진 꼬부랑길과

너덜지대를 통과하느라 마지막까지 비지땀을 흘려야 했다.

 

 

 


옆에서 본 지룡산(마치 지룡이 입을 벌린 듯)

 

 


오후 2시 50분 하산을 완료하였다.

하산을 하고 돌아보니 지룡산 서북쪽은 깎아지른 바위 벼랑이었다.

 

치마바위라고 하는 데

내가 보기에는 지룡(地龍)의 쩍 벌린 입 같았다.

 

하산주로 막걸리 대 여섯 잔을 연거푸 들이키고 나니

배가 빵빵하게 차오르며 머리가 어질어질 하였다.

 

 

 


호거대의 일몰

 

 


고개를 들어 호거대(虎居臺) 쪽을 바라보았다.

 

산 너머로 해가 비스듬히 기울고

하루 종일 유현(幽玄)하고 현묘(玄妙)한 기운에 싸여

포근하게 잠들어 있다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깨어난 산(山)이

호랑이로 화신(化身)하여 으르렁! 하며 포효(咆哮)하고 있었다.

 

 

2005. 11. 26.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후기:

처음으로 그림이 있는 산행기를 올려 보았습니다.

홀로 독학으로 배운 솜씨라 아직은 미숙하고 어설퍼 보일지라도

정성을 보아 예쁘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세월-영남알프스및 울산근교산
글쓴이 : 월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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