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7. 25.(일) 08:00 태화동 고수부지 공영주차장에서
세월님 19명을 태우고 출발한 버스는 울산-언양간 국도를
시원하게 질주하였다.
언양 반천에서 하늘왕자님과 해울님을 태우고,
작괘천입구에서 경주에서 오신 동보 내외분을 태워,
오늘 산행인원은 총 23명이 되었다.
대장님은 가는 도중에
갑자기 쭈쭈바가 먹고 싶다며,
세월님들에게 쭈쭈바를 돌리셨다.
08:50경 가천 장제 마을을 지나
어떤 별장입구에 도착하였고, 거기서부터 오늘의 산행이 시작되었다.
간단한 준비를 마치고 09:00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는데,
군사격장옆으로 길게 쳐져있는 철조망을 따라 이어진 등산로는
맑고 푸른 오늘의 하늘을 닮은 보라빛 도라지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습한 공기는 시작부터 온몸을 땀으로 젖게 했고,
그늘 하나 없는 단조로운 경사길은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철조망 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
에베로릿지로 가는 길과 우회로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왔는데,
외자님, 위생사님 그리고 동보님의 부인을 제외한 모든 여전사들은 우회로를 택하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에베로릿지를
향하는 길을 선택했다.
얼마를 올라가니 숲길이 나타났고,
올라오는 동안 다리도 어느 정도 경사길에 적응이 되어
그런대로 걸을 만하게 되었다.
09:50 제일 뒤쳐져 에베로릿지 조(組)를 따라가던 내 눈앞에
갑자기 병풍같이 생긴 거대한 바위 절벽이 나타났는데, 그
절벽 사이로 생선비늘같이
윤기를 머금은 물줄기가 한낮의 황소 눈망울처름 게으르게 흘러 내리고 있었다.
몇주째 제대로 된
비가 내리지 않아 수량은 보잘 것 없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뿜어내는 서늘한 한기(寒氣)는 지금이 무더운 한여름임을 감안하면,
선인(仙人)의 경계(境界)가 따로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일까?
대장님은 오늘 유난히 여유를 부리셨다.
무려
30여분의 한담(閑談)을 우리에게 허용하시고
10:20분이 다 되어서야 출발을 명하셨다.
그리고 이어진 길은 계속되는 가파른 오르막과 바위타기였다.
이 단조롭고 위험한 바위타기를 견딜만 하게 한 것은
잦은 휴식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발아래로 펼쳐진 깍아지른 벼랑이 주는 짜릿한 스릴이었다.
이 능선의 중간쯤 올라왔을 때 오른편으로 바라보이는 산허리로,
마치 열병식(閱兵式)을 치르듯 크고 작은 바위들이 나란히 줄을 서서
계곡 쪽으로 흘러내리는 장관(莊觀)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리랑 릿지와 쓰리랑 릿지라 했다.
12:00 엄청난 땀을 흘리며 올랐던 능선이 끝나자 말자,
갑자기 넓은 산정평원(山頂平原)이 나타났다. 신불평원이었다.
넓은 평원위로 키작은 억새들이
저멀리 재약산을 넘고 배내골을 건너왔을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 이리저리 몸을 누이고
있었다.
너무나 아까운 길이라 최대한 속도를 낮추어 천천히 걸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 하나하나를 가슴속에 다
담아가고 싶었다.
나의 상상력은 어느듯 몇만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저 넓은 평원을 돌도끼와 죽창을 들고
거친숨을 몰아 쉬며
달아나는 멧돼지를 좇는 구리빛 근육의 원시인을 그리고 있었다.
그때 무슨 교묘한 권력과 복잡한 제도, 정교한 사유체계가
있었으랴!
그저 배고프면 사냥하고, 배부르면 놀고, 힘들면 쉬는, 저 건강하고 단순한 원시성!
아! 그런데 현대(現代)라고
통칭되는
이 괴물같은 시대는 왜 이리도 사람을 쓸데 없이 바쁘게 하는지...,
갑자기 저 산아래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이 가소롭게
느껴졌다.
이 평원위에서 몇만년을 온전하게 이어온 자연에 비하면,
저 산아래 인간의 것은 얼마나 보잘것 없고 부질없는
것인가...,
멧돼지을 좇느라 잔뜩 거칠어진 원시인의 숨소리가
귓가를 점령할 때쯤 해발
1,092m의 영취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세월님들과 간단하게 기념촬영을 하고,
바로 오늘의 오찬장으로 예정된 샘터로 향했다. 12시
30분경이었다.
정상에서 약 5분정도 거리에 있는 샘터는
가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약 50분 정도 이어진 점심식사는 로마인들이 왜 공동식사를 단합의
최고 의식으로 여겼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했다.
13:20경 샘터에 다른 산행팀들이 도착하였는데,
장소를 비워주기 위해 대장님은 갑작스레 오후산행의 출발을 명하셨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일까?
갑자기 나른한 권태가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출발한 지 10분쯤 지나,
평원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니
산이 좋아 산에서 죽은자를 위해 마련한 듯한 작은 추모비가 하나 나왔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돌에 새겨서까지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일까?
결국 저 돌 또한 세월의 풍화작용을 이기지 못하고 그저 평범한
돌덩이로 돌아갈텐데...,
자신이 입고 지냈던 육신조차 영혼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로 돌아가고 마는 것을...,
아니, 영혼이 거기에 머물고 있는 순간에도
육신은 끊임없이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을...,
하물며, 육신의 밖에 있는 부귀공명(富귀功名)이야 더 말해 무엇하리...,
오호!
제행무상(諸行無常)이요,
제법무아(諸法無我)로다!
모든 것은 텅 비어 고정된 실체가 없으니,
모든 것은
변하고, 딱히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네...,
그래도 어리석은 인간은
흰소의 코뚜레 하나 꿰지 못하고,
그 흰소에 끌려 다니며 쓸데없이 바쁘기만 하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나홀로 걷기를 계속하다가
14:15경 함박등에 올랐다.
거기서, 대장님, 태산님, 내게로님, 하늘왕자님과 더불어
바로 건너편 채이등 - 일명 '젖꼭다리봉[乳頭峰]' - 을 바라보며 세상과 시절을 논하였다.
얼마후 우리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꺽어 바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은근한 내리막길에 다리는 후들거리고 땀은 비오듯 솓아졌다.
한참을 내려가니 백운암이 나타났고,
거기서 다시 일행을 먼저 보내고 홀로 뒤쳐져
크고 작은 돌무더기로 이어진
너덜지대를 통과하였다.
너덜지대가 끝나갈 무렵,
더위와 피로로 정신이 가물가물해져
넓직한 너럭바위위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개비의 담배를 물고 있는데,
지금까지 요란하던 산새소리와 매미소리도 끊어지고
갑자기 둥그런 정적이 찾아왔다.
이후 극락암까지 이어진
울창한 소나무길을 그 둥근 정적과 함께 걸었다.
16:00 꼴찌로 극락암 입구에 도착하였고,
거기서 기다리던 일행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조금 내려와 시냇물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세심교(洗心橋) 다리밑에서 발을 담근채 하산주(下山酒)를 마셨는데,
태풍님, 무용님, 겨울사랑님 등 세월의 주당들이 모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준비한 하산주는 순식간에 동이 나고 말았다.
17:00 조금은 술이 고픈 채로 울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고단한 몸에 들어간 하산주는
금새 취기가 올라
눈꺼풀을 무겁게 했다.
잠결에 누군가가 "그래 마음은 씻었느냐?"고 물어,
벌떡 눈을 떠보니 아무도 없고 차창밖으로 내다본
산은
어느새 검은 구름을 뒤집어 쓰고 취한 듯 잠들어 있었다.
2004. 7. 26.
달을 온전하게 비추고자 하는 연못 月池
후기(後記)
마하님이 설악산에 가셔서
예정되었던
불교강의를 들을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산행기를 선적(禪的)인 분위기로 채워 봤습니다.
혹여, 반감을 가질 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으나,
종교적인 차원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 혹은 지혜쯤으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등록(傳燈錄)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중국의 고승 중에 '천연단하'라는 선사가 계셨는데,
이분이 어느 겨울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어느 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절 주지가 고승을 몰라보고 절을 좀
지키라 하고 외출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단하선사가 대웅전에 모셔져 있던 목불(木佛)을
도끼로 패어
아궁이에 넣고 군불을 지피고는 궁둥이를 까고 불을 쬐고 있더랍니다.
놀란 주지가 달려와 단하선사의 멱살을 잡고,
"이 땡중이 성스런 부처님에게 이런 불경한 짓을 하다니!"하며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단하선사는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야 이놈아 도대체 왜 이리 방정스럽게 구느냐?" 고 일갈하였고,
주지는 "이 땡초가 어디 신성한 부처님을
아궁이에 쳐 넣어 불을 지르느냐?"며 더욱 방방뛰었습니다.
그러자 단하선사는
"허 이놈 봐라, 그래 네가 말하는 부처님이 어디 계시는지 어디 한번 찾아 보자"며,
부지깽이로 불타고 있는 나뭇토막을 이리 저리 뒤적거렸습니다.
그때서야 이 어리석은 주지도 뭔가 감을 잡은
모양입니다.
방방뛰던 주지가 조용해지자, 단하선사께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생불은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데, 그깟 나무쪼가리가
뭐가 그리 대수냐?"
제가 알고 있는 진정한 불교는 위 일화에 나오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런데, 요즘 제도로서의 불교는 그
건강성을 많이 상실하고 있는 듯 합니다.
살아있는 부처님은 간 곳없고, 온통 중창불사로 돈을 쳐바르는데 여념이 없지요.
그것이
자연경관을 해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제가 산행기에서 말하고자 했던 불교의 세계는
위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모습의 건강한 불교입니다.
다시 말해 현재의 제도적 종교로서의 불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 오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주부터 휴가갑니다.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재충전해서 돌아오겠습니다.
님들도 휴가 잘 보내고 오십시요.
아윌비백!
웰빙 세월!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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