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메니데스에 의해 수립된 다(多)와 운동(運動)을 부정하는 ‘부동(不動)의 일자(一者: the one)’ 개념은 플라톤에 이르러 이데아 중심의 형상이론(形相理論)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플라톤은 이데아와 현실적 사물, 형상과 질료, 이상과 현실, 영혼과 육체, 감각적인 것과 가지적인 것 등을 준별(峻別)하고 그 가치에 차이를 두는 이원론(二元論)의 입장에 섰다. 그러나 플라톤의 제자이면서도 플라톤과 또 하나의 쌍벽을 이루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게 되면, 형상과 질료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체 안에 공존하고 있으며, 형상은 질료 속에서 자신을 구현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존재 속에서도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게 하는 힘으로 파악된다. 이와 같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견해 차이는 스승 플라톤이 시간을 배제한 채 영원한 형상을 탐구하는 수학을 중시하였음에 반해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의 경과와 함께 형상이 질료 속에서 조금씩 현실화되면서 마침내 하나의 개체가 태어나게 되는 과정을 연구하는 발생학(embryology)에 주된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편, 마케도니아 출신의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 전역과 오리엔트 지방을 통일하고 그 뒤를 이어 등장한 로마가 지중해를 내해로 삼는 거대한 제국을 수립하면서 그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바, 이것이 이른바 헬레니즘 문화이다. 이 시대는 수없이 이어지는 정복전쟁과 그 결과로 넓어진 활동무대로 인해 철저한 개인주의와 사해동포주의라는 상반된 조류가 공존하면서 지적탐구보다는 험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고요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인가로 관심의 방향이 전환되었다. 그리하여 철학에서는 그 이전 시대의 거대한 이론이나 사유체계, 치밀한 논증보다는 개인의 안심입명을 구하는 인생철학으로 전환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구원을 추구하는 종교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으로는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를 들 수 있는데, 이 두 학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의 철학을 거부하고 유물론의 철학을 수립하였다. 유물론적 철학체계에서는 세계가 사전의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물질에 의해 조직된 것이 세계라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또 이 두 학파는 삶이란 힘겨운 것이며 세상은 적의로 가득 차 있다고 보는 다분히 염세적인 철학이라는 점에서는 공통되지만 그에 대한 처방에서는 상반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스토아학파는 금욕의 철학을 세웠는데, 무의미한 열정으로부터 해방되어 잔잔하고 평화로운 삶, 곧 pathos를 초연하게 극복한 apatheia의 경지를 추구하였다. 그러면서도 ‘하늘이 무너져도 그대의 의무를 다하라’라는 말처럼 삶에 대한 강인한 의무를 강조하였다.
반면, 에피쿠로스학파는 기쁨/쾌락의 철학을 세웠는데,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동요로부터의 자유라고 규정하면서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평온함을 추구하였다. 삶의 많은 문제들은 실제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우리들의 그릇된 믿음 때문이므로 쾌락추구의 핵심적인 방법으로 지적탐구와 대화를 강조하였다.
한편, 이 시대에는 구원에 대한 관심으로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다양한 종교적 흐름이 등장했는데, 오르페우스교와 피타고라스학파가 결합하여 플라톤의 이원론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신피타고라스학파, 육체(물질적인 것)를 초월해야 영혼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한 영지주의(gnosis: 神智學), 그밖에 선과 악, 빛과 어둠, 영혼과 육체 등 대립시키는 오리엔트지방의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등은 모두 철저한 이원론에 입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플로티노스(Plotinos; 205?~270)는 플라톤을 보다 종교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여 이른바 신플라톤학파를 수립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을 계승하되 좀 더 현실적이고 경험적인 사유로 나아갔다면 플로티노스는 보다 종교적이고 초월적인 사유로 나아갔다. 중세사람들이 플라톤의 사유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상 상당부분 플라티노스의 사유였다. 플로티노스와 그의 후계자들은 대개 이집트 등 오리엔트 출신이었으며 그리스-로마적 전통에 오리엔트적 요소들을 가미했다.
플로티누스의 철학은 흔히 유출설(流出說)로 불리는데, 플라톤이 감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을 나누었다면 플로티누스는 존재들을 위계적으로 배열한다. 궁극적 존재인 일자(一者: the one)가 있고, 일자는 넘쳐흐르는 그 무엇이기 때문에 다른 존재들은 일자로부터의 유출로 성립한다. 그리하여 마치 태양에서 흘러나온 빛이 사방으로 비춰져 나가듯, 일자->이성(nous: 정신으로도 번역한다)->영혼(psyche)->동물, 식물, 물질의 형태로 존재의 위계질서가 형성되면서 각각의 존재들은 서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이어지면서 마지막에는 물질에 도달한다.
이와 같이 플로티노스의 사상은 일원론적이고 연속적이다. 그러면서도 또한 초월적이다. 그래서 일자는 어디서나 임재(臨在: parousia)한다. 그리고 이 임재가 초월의 근거가 된다. 다시 말해 물질의 세계에서 출발해 존재의 사다리를 올라가 일자에 가까이 가야하는 당위가 도출되는 것이다.
플로티노스는 훗날 기독교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일자의 유출은 기독교의 은총에 대응된다. 피조물이 신과 단절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신의 그 무엇인가가 이곳까지 오는 것은 은총이다. 플로티노스의 일자는 대상과 연속적으로 교통하려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신과 인간 사이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불연속이 도입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로티누스에 입각해서 기독교철학을 구성했고 그 철학이 중세로 이어진다.
이 책 ‘플로티노스’는 그리스 철학을 기독교에 전달한 사상가로 평가되는 플로티노스의 생애와 사상을 간략하게 요약한 책이다. 책의 분량이 작아 이해에 다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문 중에 인용되는 플로티노스의 저작[에네아데스(Enneades: '아홉 벌'이라는 의미): 플로티노스의 친구이자 제자인 포르피리오스가 편집]을 통해 플로티노스의 생각의 편린들을 직접 접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2013년 12월 9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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