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 동양

간축객서

월지 2013. 4. 15. 02:46

諫逐客書

간축객서

 

李斯

이사

 

臣聞吏議逐客,竊以爲過矣.

신문리의축객,절이위과의.

 

신이 듣기에 대신들이 타국 출신의 관리들을 쫓아내기로 했다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잘못된 일입니다.

 

昔穆公求士,西取由余於戎,東得百里奚於宛,迎蹇叔於宋,求丕豹, 公孫支於晉.

석목공구사,서취유여어융,동득백리해어완,영건숙어송,구비표, 공손지어진.

 

옛날 목공(穆公)은 현사들을 맞아들였는데, 서쪽으로는 융(戎)에서 유여(由余)를 얻었고, 동쪽으로는 완(宛)에서 백리해(百里奚)를 얻었으며, 송(宋)에서는 건숙(蹇叔)을 맞이했고, 진(晋)에서는 비표(丕豹)와 공손지(公孫支)를 찾았습니다.

 

此五子者,不産於秦,而穆公用之,井國二十,遂覇西戎.

차오자자,불산어진,이목공용지,정국이십,수패서융.

 

이 다섯 명은 진 출신이 아니나, 목공을 그들을 써서 20개 나라를 병합하고 서융의 패주가 되었습니다.

 

孝公用商鞅之法,移風易俗,民以殷盛,國以富彊,百姓樂用,諸侯親服, 獲楚,魏之師,擧地千里,至今治强.

효공용상앙지법,이풍역속,민이은성,국이부강,백성락용,제후친복, 획초, 위지사,거지천리,지금치강.

 

효공(孝公)은 상앙(商鞅)의 법을 써서 낡은 풍속을 바꾸자 백성들이 풍성해졌고, 나라가 부강해졌으며, 백성들은 국가의 부름을 기뻐했고, 제후국들은 복종했으며, 초(楚)와 위(魏)를 무찔러 영토가 천리에 이르러 오늘에 이르기까지 잘 다스리고 있습니다.

 

惠王用張儀之計,拔三川之地,西井巴蜀,北收上郡,南取漢中. 包九夷,制鄢郢, 東據成臯之險,割膏膄之壤,遂散六國之從,使之西面事秦,功施到今.

혜왕용장의지계, 발삼천지지, 서정파촉,북수상군,남취한중, 포구이,제언영,동거성고지험,할고유지양,수산육국지종,사지서면사진, 공시도금.

 

혜왕(惠王)은 장의(張儀)의 계책을 써서 삼천(三川) 땅을 취했고, 서쪽으로는 파촉(巴蜀)을 병합했으며, 북으로는 상군(上郡)을 거둬들였고, 남으로는 한중(漢中)을 얻었고, 많은 이민족 땅을 포용했으며, 초(楚)의 언(鄢) 과 영(郢) 땅을 다스렸으며, 동으로는 성고(成臯)의 험난한 곳을 점령하여 기름진 땅을 빼앗았고, 육국의 합종책을 깨뜨려 그들이 서쪽의 진(秦)을 섬기도록 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昭王得范雎,廢穰侯,逐華陽,强公室,杜私門,蠶食諸侯,使秦成帝業。

소왕득범저,폐양후,축화양, 강공실,두사문,잠식제후,사진성제업。

 

또 소왕(昭王)은 범저(范雎)를 얻고 나서 양후(穰侯)를 폐하고 화양군(華陽君)을 쫓아내 왕조를 강화하고 권신의 세력을 억제했으며, 제후국들을 점령하였는데, 이로써 진은 제왕의 위업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此四君者,皆以客之功. 由此觀之,客何負於秦哉!

차사군자,개이객지공. 유차관지,객하부어진재!

 

이 네 분의 군주는 모두 타국 출신 관리들을 중용하여 공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보건데 타국 출신의 관리들이 어찌 진국(秦國)에 장애가 되겠습니까?

 

向使四君却客而不納,疏士而不用,是使國無富利之實,而秦無强大之名也.

향사사군각객이부납,소사이불여,시사국무부리지실,이진무강대지명야.

 

만일 네 분의 군주께서 타국 출신의 관리들을 거절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현자들을 멀리 하여 함께 하지 않았다면, 나라가 부강해지지 않았을 것이고 진(秦) 역시 강대한 이름을 떨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今陛下致昆山之玉,有隨和之寶,垂明月之珠,服太阿之劍,乘纖離之馬,建翠鳳之旗,樹靈鼉之鼓.

금폐하치곤산지옥, 유수화지보, 수명월지주, 복태아지검, 승섬리지마, 건취봉지기, 수령타지고.

 

현재 폐하께서는 곤산옥(昆山玉)을 얻으셨고, 수후주(隨侯珠)와 화씨벽(和氏璧)이 있으며, 명월주(明月珠)를 드리우셨고, 태아검(太阿劍)을 차셨으며, 섬리마(纖離馬)를 타시고, 취봉기(翠鳳旗)를 세우셨으며, 영타고(靈鼉鼓)를 설치하셨습니다.

 

此數寶者,秦不生一焉,而陛下說之,何也?

차수보자, 진불생일언, 이폐하열지, 하야?

 

이 여러 가지 보물들 가운데 진에서 난 것은 하나도 없지만, 폐하께서는 그것들을 좋아하는데, 어째서 그렇습니까?

 

必秦國之所生然後可,則是夜光之璧不飾朝廷. 犀象之器不爲玩好. 鄭衛之女不充後官. 而駿馬抉提不實外廐. 江南金錫不爲用. 西蜀丹靑不爲采.

필진국지소생연후가, 칙시야광지벽불식조정, 서상지기불위완호, 정위지녀불충후관, 이준마결제불실외구, 강남금석불위용, 서촉단청불위채.

 

반드시 진국(秦國)에서 난 것만 쓴다면, 야광주(夜光珠)는 조정을 장식할 수 없고, 서각(犀角)과 상아(象牙)는 가지고 노닐 수 없고, 정(鄭)과 위(衛)의 미녀들은 후궁으로 삼을 수 없고, 결제와 같은 준마(駿馬)들은 밖의 마구간을 채울 수 없고, 강남(江南)의 금석(金錫)은 쓸 수 없고, 서촉(西蜀)의 단청(丹靑)으로는 채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所以飾後官,充下陳,娛心意,說耳目者,必出於秦然後可,則是宛珠之簪,傅璣之珥,阿縞之衣, 錦繡之飾, 不進於前. 而隨俗雅化,佳冶窈窕趙女, 不立於側也.

소이식후관,충하진,오심의,열이목자 필출어진연후가,칙시완주지잠,부기지이,아호지의, 금수지식,부진어전, 이수속아화,가야요조조녀, 불립어측야.

 

또한 후궁을 치장하고, 시녀들을 꾸미며, 마음을 즐겁게 하고, 귀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진(秦)에서 나온 것이라야만 한다면, 구슬로 꾸민 비녀나, 갖가지 모양의 구슬이 달린 귀걸이, 동아(東阿)의 흰 비단으로 만든 옷, 수놓은 비단으로 만든 장식물 등은 폐하께 진헌할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풍속에 따라 우아하고 아름답게 꾸민 조신한 조나라의 여자들도 폐하 곁에 없었을 것입니다.

 

夫擊甕叩缶,彈箏搏髀,而歌呼嗚嗚快耳者,眞秦之聲也.

부격옹고부,탄쟁박비,이가호오오쾌이자,진진지성야.

 

질항아리를 치며 질그릇을 두드리고, 거문고를 타면서 넓적다리를 때려 장단 맞추면서 시끄럽게 노래 부르고 즐기는 것이 진짜 진나라의 음악입니다.

 

鄭衛桑間,韶虞武象者,異國之樂也.

정위상간,소우무상자,이국지악야.

 

정(鄭), 위(衛), 상간(桑間), 소우(韶虞), 무상(武象)의 음악은 다른 나라의 음악입니다.

 

今棄擊甕而就鄭衛,退彈箏而取韶虞,若是者何也?

금기격옹이취정위, 퇴탄쟁이취소우,약시자하야?

 

오늘날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는 음악을 버리고 정위(鄭衛)의 음악을 취했고, 거문고 타는 것을 버리고 소우의 아악을 취했는데, 이는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快意當前,適觀而已矣.

쾌의당전,적관이이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들 가운데 보기 좋은 것들을 골랐을 따름입니다.

 

今取人則不然,不問可否,不論曲直,非秦者去,爲客者逐,然則是所重者在乎色樂珠玉,而所輕者在乎人民也. 此非所以跨海內,制諸侯之術也.

금취인칙불연,불문가부,부론곡직,비진자거,위객자축,연즉시소중자재호색악주옥,이소경자재호인민야. 차비소이과해내, 제제후지술야.

 

지금 사람을 쓰는 것은 이렇지 않습니다. 가부를 묻지 않고, 또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진나라 출신이 아니면 쫓아 보내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여색, 음악, 구슬과 옥 등이요, 가벼이 여기는 것은 백성일 따름입니다. 이는 나라 안을 벗어나 제후들을 다스리는 술책이 아닙니다.

 

臣聞地廣者粟多,國大者人衆,兵强者士勇. 是以泰山不讓士壤,故能成其大;河海不擇細流,故能就其深.

신문지광자속다, 국대자인중, 병강자사용. 시이태산불양토양,고능성기대,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

 

신이 듣기에 땅이 넓다는 것은 곡식이 많은 것이고, 나라가 크다는 것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며, 군대가 강하다는 것은 병사가 용감하다는 것입니다. 태산은 한 줌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높을 수 있었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길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 깊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王者不却衆庶,故能明其德。是以地無四,方民無異國,四時充美,鬼神降福。此五帝, 三王之所以無敵也.

왕자불각중서,고능명기덕。시이지무사,방민무이국,사시충미,귀신강복。차오제, 삼왕지소이무적야.

 

왕은 백성들을 버리지 않아야 그 덕을 밝힐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는 사방의 구별이 없으며, 백성에게는 남의 나라라는 것이 없고, 네 계절은 모두 아름다우니 귀신이 복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왕오제(三王五帝)에게는 적이 없는 이유입니다.

 

今乃棄黔首以資敵國,却賓客以業諸侯,使天下之士退而不敢西向,裹足不入秦,此所謂『藉寇兵而齎盜糧』者也.

금내기검수이자적국,각빈객이업제후,사천하지사퇴이불감서향, 과족불입진, 차소위 『자구병이재도량』자야.

 

이제 백성을 버리는 것은 적국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고, 타국 출신 관리들을 버리는 것은 다른 나라가 위업을 달성토록 하는 것입니다. 천하의 현사들을 쫓아내 감히 서쪽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고 발을 묶어 진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바, 이는 곧 도적에게 병사를 주는 꼴이고, 도적에게 양식을 가져다주는 것과 같습니다.

 

夫物不産於秦,可寶者多. 士不産於秦,而願忠者衆. 今逐客以資敵國,損民以益仇,內自虛而外樹怨於諸侯,求國無危,不可得也.

부물불산어진, 가보자다. 사불산어진, 이원충자중. 금축객이자적국,손민이익구,내자허이외수원어제후. 구국무위, 불가득야.

 

대저 물품이 진나라에서 나지 않아도 보물은 많으며, 현사가 진나라 출신은 아니지만 충성을 받치려는 자는 수 없이 많습니다. 이제 타국 출신 관리들을 쫓아 보냄으로써 적국에 보탬이 되게 하고, 백성을 잃어 원수를 유익하게 하면 안으로는 스스로가 약해지고 밖으로는 제후국을 원수로 만드는 일입니다. 나라에 위험이 없게 하려면, 취할 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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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李斯)

전국시대 초나라 상채(上蔡) 사람으로 진(秦)에 들어가 객경(客卿)이 되었으며, 시황이 천하를 평정하자 승상(丞相)이 되었다. 무자비하나 매우 효율적인 법가(法家) 사상을 이용하여 여러 나라를 합병하고, 통일제국 진(秦:BC 221~206)을 건설하는 데 공헌했다. 진의 승상으로서 BC 221년 이후 시행된 거의 모든 정치·문화의 급진적 개혁을 주도했다. 전국을 36군(郡)으로 나누었으며, 모든 군은 조정에서 임명한 관리가 다스리도록 했다. 그의 제안에 따라 시황제는 화폐단위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또한 그는 천하의 모든 문자를 전서체(篆書體)로 통일시키도록 했는데, 한자(漢字)는 그 후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존속되어왔다. 한편, 불온한 사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BC 213년 역사교육을 금지하고 분서(焚書)를 명령했는데, 이로 말미암아 그는 후대 모든 유학자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BC 209년 시황제가 죽자, 황위 계승자를 바꾸려는 환관 조고(趙高)의 음모에 가담했다. 그러나 2년 후 둘 사이에 암투가 생겼고 조고는 그를 사형에 처했다.

 

*간축객서(諫逐客書)

진시황 시절, 초나라 출신인 이사가 진시황의 신임을 받아 출세하다가, 노애의 난으로 인한 후폭풍으로 진의 왕족과 기존 고관들 사이에서는 여불위와 그 밑에 있다가 관료로 출세한 타국 출신 식객들을 국외로 추방하자는 여론이 일게 되었다. 이에 진왕 정은 '축객령(逐客令)'을 내려 타국에서 온 자들을 쫓아내려 하는데 이사가 이를 반박하면서 이른바 '간축객서(諫逐客書)'을 올렸다. 진나라 출신이냐 아니냐를 따져서는 인재를 얻지 못하고 천하통일의 대업도 이루지 못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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