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수업이 있는 날이라 딸아이의 귀가를 기다렸다가 집을 나서니 벌써 오후 1시가 넘었다. 언양의 한 할인점에서 부족한 준비물을 보충하고 경주 시내의 한 식당에 들러 장터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보문단지를 지나 덕동호 상류의 들머리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넘어 있었다.
세 사람이 각자 배낭 하나씩을 메고 계곡으로 들어섰다. 산색이 지난주에 비해 훨씬 다채로워지고 계곡의 물빛도 많이 여물어진 것 같다. 이따금 무리를 지어 하산하는 사람들로 인해 좁고 긴 계곡이 들썩거렸다. 가을이라는 계절 탓인지 아니면 무장사지 계곡과 오리온 목장이 너무 많이 알려져서인지 예전에 비해 사람들의 숫자가 부쩍 많아진 느낌이다. 모두가 하산을 하는 늦은 시각에 심상찮은 부피의 짐을 지고 올라가는 일가족을 보고 모두들 호기심어린 눈길을 보낸다.
딸아이와 집사람을 동반해서 그런지 쉬는 횟수가 잦다. 자꾸 시간이 지체된다. 당초의 계획으로는 2시간 정도만 걸으면 충분히 야영 예정지까지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야영지에 텐트를 설치하고 모닥불을 피울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오고도 산자락을 붉게 물들일 낙조(落照)를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 남으리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웬걸. 계곡을 벗어나 목장 초입의 완만한 능선으로 막 들어섰을 때 이미 해가 완연하게 기울어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이 속도로는 도저히 저물기 전에 야영지에 도착할 자신이 없었다. 딸아이와 집사람을 뒤에 남겨두고 쏜살같이 내달았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더위 먹은 개 마냥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고바위 길을 치고 오를 때에는 “30분만 더 일찍 출발 할 걸”하는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연하고질병(煙霞痼疾病) 환자(患者)들을 이끌고 외유산행(外遊山行)을 나설 때마다 느낄 한돌 교주님의 심정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모든 제반 요소를 고려하여 계획을 잡고, 모든 일정을 그 계획에 맞춰 이끌어야 하며, 언제나 있기 마련인 계획과 일정을 어긋나게 만드는 돌발 상황에서도 기민하고 여유 있게 대처해야 하는 대장노릇 하기의 그 고단함. 졸병 된 자는 결코 이해하기 힘든 그 고단함을 생각한다면 앞으로는 함부로 한돌 교주님에게 외유가자는 떼쓰기를 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지난주 미리 점찍어둔 야영지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텐트를 설치하고 나니 딸아이와 집사람이 도착하였다. 특히 집사람은 입이 한발이나 나왔다. 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어둠이 내리는 비탈길을 쉬지도 않고 올라왔으니 그럴 만도 하리라.
한번 내리기 시작한 저녁 어스름은 순식간에 사방을 칠흑(漆黑)으로 물들였다. 그러나 아직 제일 중요한 모닥불용 마른 나뭇가지를 준비하지 못했다. 급한 마음에 집사람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무작정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손으로는 나뭇가지를 더듬고 발로는 땅바닥을 휘저으며 땔나무를 찾아나갔다. 다행히 얼마 안 있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나무 고사목 더미를 찾아냈다. 비로소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던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는 법대로.
숲속에서 끌고 온 고사목의 잔가지는 손으로 꺾고 줄기는 발로 밟고 짧게 부러뜨려 장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둥그렇게 쌓아 올리고 불을 붙였다. 곧이어 장작더미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동안 불안함과 무서움에 잔뜩 움츠러들어 있던 딸아이와 집사람의 얼굴도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장작불이 내뿜는 빛과 열기 때문이리라. 빛과 열.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 모닥불 형태의 빛과 열이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의 굴레를 벗어나 진화를 거듭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찬란한 문명을 이루게 한 첫 출발점이리라.
모닥불이 제 스스로의 힘으로도 불길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 안정이 되자 버너로 라면을 끓여 딸아이와 집사람을 먹이고 나는 장작불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미리 준비해간 훈제 삼겹살을 달군 후 소주를 마셨다. 장작불에 달궈지면서 내뿜는 그 구수한 냄새가 좋았던지 딸아이와 집사람의 젓가락이 모두 훈제 삼겹살을 향했다. “야 이놈아! 안주 모자란다. 천천히 아껴먹어라.” 맛있는 반찬을 앞에 두고 항용 벌어지는 나와 딸아이의 신경전에 집사람도 흐뭇한 표정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커피까지 마신 후 마음이 급해 미처 살피지 못했던 야영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먹물을 풀어놓은 듯 캄캄한 가운데 귀퉁이가 조금 잘려나간 십오야를 조금 넘긴 달이 동녘하늘에 말없이 떠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떨어져 나온 부드러운 은빛의 월광(月光)이 광활한 대지에 질펀하게 펼쳐진 억새의 물결 위로 출렁거렸다. 그리고 풀밭 여기저기서 찌르륵거리며 울려대는 밤벌레 소리는 그 은빛의 물결을 더욱 서늘하게 만들었다. 먼 산릉(山陵)의 부드러운 실루엣 너머로 문명의 불빛이 요염한 보석처럼 반짝였다.
감미로운 불꽃을 내뱉으며 타오르던 모닥불이 그새 벌겋게 이글거리는 불잉걸을 만들어놓았다. 그 속에 은박지로 감싼 감자를 집어넣고 구웠다. 알불 속이라 그런지 감자는 금세 어느 한군데도 타지 않고 온전하게 잘 익었다. 처음에는 과연 저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세 사람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먹다보니 감자도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밤 10시가 조금 지나 딸아이와 집사람은 텐트로 들어가고 나만 홀로 모닥불 앞에 남았다. 준비해 놓은 나뭇가지가 바닥나고 모닥불이 시들시들해졌다. 그냥 들어가 자기에는 왠지 아쉬움이 남았다. 숲속으로 들어가 고사목을 더 긁어 와서 모닥불을 키웠다.
벌써부터 술병이 바닥나 가끔씩 입속에서 침이 마르기는 했지만 장작불의 빛과 열기에 의지한 채 억새를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과 조금씩 머리와 등위로 내려앉는 이슬을 맞으며 피부양자 둘을 거느린 수컷 하나가 어둠에 잠긴 이 산정 평원에 홀로 앉아 있다는 느낌이 싫지 않았다.
생명과 성장의 대지를 깔고 앉아 시간과 변화의 하늘을 이고 있는 이 나는 누구인가. 어디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그 짠맛을 안다던가. 광대무변한 저 우주에 비한다면 티끌 한 점에도 못 미치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 또한 작은 한 우주가 아닌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문명과 제도를 벗어나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어 남과 죽음이 둘이 아닌 세계. 그 절대 자유의 세계가 거기에 있었고 나는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한 눈으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망각한 채 거기에 그렇게 있었고 피시씩 소리를 내며 내려앉은 모닥불이 피워 올린 한줄기 매캐한 연기가 눈을 따갑게 했을 때에야 비로소 거기에서 깨어났다.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잠자리에 들기 위해 비좁은 텐트 속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새벽 2시가 넘어있었다.
안경을 끼지 않은 맨눈으로도 사물의 윤곽이 뚜렷하게 식별될 만큼 환해졌을 때 텐트 밖을 나가보니 벌써 해가 뜨고도 한참이 지나있었다.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지며 억새밭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딸아이와 집사람을 깨워 야영지 주변을 산책했다. 딸아이와 집사람은 자신들이 이곳에서 하룻밤을 잤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 신기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야영장 주변은 밤새 맺힌 이슬로 온통 축축하였다. 그대로 짐을 사서 내려가기에는 물기가 너무 많았다. 다시 모닥불을 피워 딸아이와 집사람의 몸을 녹이고 장비들도 대충 말렸다. 짐을 챙겨 지게 한 후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잡게 하니 딸아이와 집사람의 얼굴에는 전문산악인 못지않은 비장한 표정이 감돌았다.
어제 올라왔던 산록의 반대편 능선을 따라 하산을 하면서 지난밤 야영을 한 산릉을 되돌아보니 말잔등 같은 부드러운 곡선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또 다른 유혹으로 빛나고 있었다.
2008년 10월 19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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