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및 여행기

연하고질(煙霞痼疾)[통일전-고위산-쌍봉-이영재-통일전 산행기]

월지 2007. 5. 27. 21:27

 

 

 

2007년 5월 26일(토요일) 오전 9시. 경주 남산 동쪽 언저리에 위치한 통일전(統一殿) 앞 주차장. 한돌, 이화, 터보, 산들메, 월지 등 5인이 내렸다.


살아온 길과 방식은 달랐지만 산(山)과 인생(人生)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는 그들이었다. 모두들 세월(歲月)에서 한 낭만(浪漫)하던 풍류파(風流派)들이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던가. 세월이 흐르면서 세월은 변했고 낭만과 풍류와 여유는 세월에서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듯이 그들은 이제 세월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을 세월 밖에서 찾기로 하였다. 오늘은 그들이 세월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세월 밖에서 찾기 위한 첫 여정(旅程)이었다.

 

 


통일전 앞 주차장 바로 옆은 서출지(書出池)였다. 물가에 고풍스런 누각(樓閣)이 앉아 있는 이 조그만 연못은 푸른 수련 이파리로 붐볐다. 남쪽마을 곳곳에는 누렇게 익은 보리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마을을 지나 칠불암으로 이어지는 계곡을 얼마쯤 따라 걷다가 왼쪽으로 부드럽게 이어진 능선을 탔다.

 


남산은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그 선(線)이 부드럽지만 바위와 마사토로 이루어진 그 질감은 거칠다. 비록 키는 작지만 올망졸망한 봉우리와 깊고 얕은 계곡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이 산은 마치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예쁜 여자 탤런트 같다.

 


산행이라기보다는 봄소풍을 나온 것 같은 걸음걸이로 걸었다. 소년․소녀 같은 부풀고 설레는 가슴으로 웃고 떠들었다. 우리가 처음 타고 올랐던 능선은 북쪽으로부터 내려온 능선과 만났다.

 

 

 


우리는 다시 백운암을 왼쪽으로 바라보며 서쪽으로 이어진 능선을 탔다. 오전 11시 30분쯤 고위산 정상에 도착했다. 그러나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북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진 능선을 따라 갔다. 그리고 쌍둥이처럼 이어진 두 개의 봉우리 중 첫 번째 봉우리에서 쉬었다. 쌍봉(雙峰)이었다. 이화님이 쑥떡을, 한돌님이 왕포도를 내놓으셨다. 허기가 져있던 상태라 모두들 게걸스럽게 먹었다.


쌍봉을 지나자 바로 급한 내리막길이 이어졌고 내리막이 끝나자 계곡이었다. 당초 계곡을 가로질러 다시 급한 능선을 치고 금오산으로 오를 계획이었으나 월지가 깊은 한숨을 내쉬자 한돌님은 계획을 변경하여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곡을 따라 올라가자고 했다.


계곡은 완만했으나 오랫동안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아 수량은 보잘 것 없었다. 계곡을 따라 얼마쯤 올라가다가 왼쪽의 완만한 산비탈을 타고 올랐다.


군데군데 오각형의 별처럼 생긴 하얀 때죽나무 꽃이 지천으로 피었고, 알싸하고 달콤한 그 향기에 가슴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길은 완만한 오르막이다가 왼쪽으로 꺾이면서 산허리를 따라 평탄한 비단길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은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이영재로 이어져 있었다.


이영재에서 시원한 송뢰(松籟)를 맞으며 땀을 들인 후 동북쪽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걸었다. 한돌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임도는 박정희정권 시절 군 죄수들을 동원하여 닦은 길이라 한다.


오후 1시 20분 다시 통일전 앞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봄소풍 같았던 풍류파들만의 첫 산행이 끝났다.


우리는 한돌님의 차를 타고 경주시내로 들어가 천마총 옆에 있는 어느 주루(酒樓)에 몸을 풀었다. 보리비빔밥을 주문하고 동주주와 파전을 시켰다. 특히 터보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몇 순배의 술이 돌아간 후 이 새로운 산악회에 어떤 이름을 붙여줄 것인지가 화두(話頭)로 떠올랐다. 몇 개의 이름이 거론되었고 그 중에서 월지가 제시한 의견이 채택되었다.


그 이름은 ‘연하고질(煙霞痼疾)’이었고, ‘안개와 노을을 너무 사랑해 고질병(痼疾病)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바야흐로 새로운 산방(山房)이 출현하는 순간이었다. 낭만과 풍류와 여유가 흘러넘치는 아늑한 우리들 풍류파(風流派)들의 아지트가....,


2007년 5월 26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