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기말고사가 끝났다. 올 초 남해안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는 제대로 된 가족 나들이를 한 기억이 없다. 여름휴가 기간 동안에도 당일치기로만 나들이를 한 탓에 그 벅적지근한 피로와 함께 찾아오는 여행의 뿌듯함을 맛보지는 못했다.
이 해가 다가기 전에 뭔가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을 남겨줘야 가장(家長)의 면(面)이 설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하루 종일 운전대를 잡고 1박 2일 또는 2박 3일로 나들이를 하기에는 시간과 체력에서 자신이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쩍 많이 의존하게 되는 귀차니즘에 충실하면서도 목적한 바의 의도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갑자기 얼마 전에 개통한 KTX가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다.
2010년 12월 12일 늦은 아침을 먹고 12시 40분쯤 집을 나섰다. 강변 그린빌 앞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오후 1시쯤 울산역에 도착했다. 곧바로 부산역행 표를 끊고 2층의 플랫폼으로 올라갔다.
1시 9분에 울산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1시 34분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정확하게 25분이 걸렸다. 대부분의 구간이 터널을 통과하기 때문에 느긋하게 차창 밖의 풍경을 구경할 틈도 없다. 단지 지하철을 타고 몇 구간을 이동했다는 느낌이다.
열차에서 내려 역사(驛舍)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며 바라보는 바다 건너 영도의 풍경에서 집과 부산역 사이의 심리적 거리와 그 거리를 단숨에 건너뛰어 버리는 열차의 속도 사이에 가로놓인 엄청난 괴리에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부산역 앞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가 중앙동을 지나 남포동을 통과할 때 차창 밖으로 문우당 서점이 보였다. 저 서점이 세월의 더께에도 아직까지 살아남아 건재해 있다는 사실에서 묘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토성동에서 버스에서 내렸다. 얼마쯤 골목길을 걸어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 들어섰다. 골목마다 이어진 가파른 계단길이 6.25동란의 아픈 상흔을 숨기고 있다. 특별히 사야할 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가게 저 가게를 순례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의 미로 속을 헤매며 잠시 지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모든 지식이 실시간으로 검색되는 인터넷의 시대에도 책은 필요한 것일까. 이 시대의 책 속에서 찾아야 할 길은 무엇일까.
국제시장 골목길은 ‘돗데기시장’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사람들로 차고 넘쳤다. 상인들의 왁자지껄한 부산 사투리가 시장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울산 사람인 내가 타지인 이곳 부산의 남포동과 광복동의 지리를 제대로 익히게 된 것은 내 나이 스물하고도 둘일 때였다.
1987년 6월. 당시 대학교 2학년생이던 나는 한창 불붙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정권연장음모에 항의하는 데모대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전경과 백골단에 쫓겨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달아날 때 당시의 정치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한 것으로만 보였던 이 골목 상인들은 학생들을 점포 안으로 불러들여 피신시켜 주었고 고생한다며 수박화채 물을 만들어 나눠주기도 했다. 그때 느꼈던 그 진한 연대감. 좋은 세상을 만들어 장차 결혼하고 애 낳으면 마누라와 애들 데리고 옛날 이야기하면서 이 거리를 걸으리라던 그때 그 염원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나는 마누라와 딸아이를 데리고 그때 그 거리를 지나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그 나가 아니고 지금의 상인들과 이 골목을 누비는 수많은 사람들 역시 그때의 그 사람들이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목적을 향해 고독하게 걷고 있는 모래알 같은 군중 속의 한 개체일 뿐.
먹자 골목길에서 집사람의 안내로 한 식당에 들어가 김밥과 어묵과 떡뽁이를 시켜 먹었다. 주인 할머니는 자신이 바로 얼마 전 주말 예능프로인 ‘1박 2일’에 출연하였던지 입가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연신 ‘1박 2일’과 ‘이승기’의 이름을 들먹였다.
시장골목을 벗어나 미화당백화점 골목으로 들어서자 길가의 쇼윈도에 예쁘게 디자인된 부츠가 전시되어 있다. 유리창에는 50%세일이라는 문구까지 붙어 있다. 집사람과 딸아이가 기어이 가게로 들어간다. 나는 밖에서 담배를 피며 기다린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 환산되는 사회, 소비자에게 상품은 그 지위와 욕망을 드러내는 기호로 전환되고, 생산자는 상품의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 그 거대한 메카니즘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욕망마저 자본에 의해 길들여진 채 길을 잃고 비틀거리는 것은 아닐까.
가게로 들어갔던 집사람과 딸아이가 빈손으로 나왔다.
- 디자인도 예쁘고 가격도 저렴한 것 같은데 왜 하나 사지 그랬노.
- 아줌마가 저런 것 신고 다니면 남들이 다 쳐다볼 것 같아서 못샀다.
- 남들 눈이 뭐가 중요하노. 본인이 좋으면 사는 거지.
이때 딸아이가 거든다.
- 물건도 다 그에게 맞는 주인이 있는 법이다. 엄마 같은 뚱뚱한 아줌마가 저런 신발 신고 다니면 신발 버린다.
헐~ 집사람과 나는 서로의 눈만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다.
용두산 공원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연결되어 있던 옛날 미화당 건물은 헐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다. 미화당 백화점은 예전 울산 시내 중심가에 서있던 주리원 백화점과 같은 위상을 누렸다. 그러나 주리원 백화점이 그랬던 것처럼 미화당 역시 외래 자본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역사의 무대로 퇴장한 것이다. 익숙한 것의 소멸은 쓸쓸하다. 그나마 바로 근처의 ‘원산면옥’만은 새 건물로 단장하고 씩씩하게 서 있는 것이 반갑다.
PIFF(부산국제영화제) 골목 안에 있는 부산극장에서 ‘투어리스트’라는 영화를 봤다. ‘안젤리나 졸리’와 ‘조니 뎁’ 주연의 영화치고는 스토리 라인이 단조로워 별로 재미가 없다. 극장을 나서니 7시가 조금 넘었고 어둠이 내린 거리는 휘황찬란한 조명을 받아 새로운 얼굴로 태어났다.
벌써 영업을 마쳤으면 어쩌나 조바심을 치며 큰 길을 건너 문우당 서점으로 갔다. 다행히 영업은 하고 있었으나 서점은 얼마 전 폐점을 했고 지도 부문만 간신히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곳도 인터넷 서점의 유탄을 피하지는 못한 것 같다. 씁쓸한 기분으로 대형 대한민국 전도 한 장을 샀다. 그 지도가 이 무한 속도의 디지털 시대에 지금 서 있는 위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 줄 수 있기를 염원하면서.
자갈치 시장 거리는 엄청나게 큰 시장 건물이 들어서서 그런지 옛날의 그 시끌벅적한 풍경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도 환하게 불 켜진 수협 공판장에서는 생선을 다듬는 손길이 분주하였고, 그 옆의 건어물 가게들의 좌판 위에도 생선은 여전히 싱싱하였다.
한 식당에 들어가 곰장어 구이를 시켜 소주 1병을 집사람과 나누어 마셨다. 당초 소주 2병 정도는 마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곰장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맛이 못하다.
서둘러 식당을 나오니 딸아이가 아침에 충전한 교통카드를 잃어버렸단다. 집사람의 야단과 설교가 시작된다. 한번 시작하면 최소한 30분 이상 지속되는 집사람의 설교에 신물이 나서라도 지금쯤은 교정될 때도 되었는데 딸아이의 덤벙거리는 버릇은 여전하다.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에 도착하니 저녁 8시 50분. 9시에 출발하는 울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게임기에 몰두하고 있는 딸아이에게 오늘 재밌었느냐고 물으니, 딸아이는 시큰둥하게 아빠 따라가서 한 번도 재밌은 적이 없단다. 딸아이와 나는 같은 시간 속을 살아도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래도 어쩌랴. 딸아이가 라면을 좋아하고 추어탕을 싫어한다고 해서 라면만 먹일 수는 없지 않은가. 언젠가는 좋아하게 될 거라고 믿으며 억지로라도 추어탕을 먹여야 하는 것이 부모마음인 것을.
2010년 12월 12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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