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40분
주암마을 주차장에서
숲길의 10월 정기산행이 시작되었다.
탑건, 만고강산, 매니아, 월지, 청랑 등 숲길 회원 5명과
게스트 3명을 포함하여 인원은 총 8명이었다.
가파른 산허리 길을 5분쯤 걸어 올라가자
길은 갑자기 평탄해지면서 계곡이 나오고
우거진 숲 사이로 파란 가을하늘이 보였다.
군데군데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많이 여물어져 있었고
여기저기 무더기로 피어난 하얀 억새와
조금씩 푸른빛을 잃어가는 나뭇잎에는
가을이 묻어나고 있었다.
길은 큰 고바위 없이
능선에 이를 때까지 평탄하게 이어졌다.
지난여름 이래로
제대로 된 산행을 거의 하지 못하다가
이 가을 들어 몇 주째 성실하게 산을 타서 그런지
아니면 지난 개천절 날 아프다는 핑계로
온종일 집에서 잠만 자서 그런지 몸의 상태가 좋았다.
그리하여 계곡이 끝나고
펑퍼짐한 안부에 자리 잡은
주막(酒幕)에 첫번째로 도착하였다.
12시 15분이었다.
널따란 평상위에 올라앉아
막걸리와 도토리 묵무침을 시키고
직접 꽁치찌개를 끓였다.
여러 사람이 내놓은 푸짐한 반찬에다
반주까지 곁들이니 최고의 오찬이 따로 없었다.
산을 탐닉하기 위해 먹는 즐거움까지 희생할 숲길이 아니었다.
산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숲길이었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안기고 즐기는 것일 뿐이다.
오후 1시 40분
느긋한 점심을 끝내고 오후 산행을 시작하였다.
넓고 펑퍼짐한 산록을 가로질러 샘물산장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얼마간 키 작은 숲길을 걸어가자
넓고 질펀하게 펼쳐진 억새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억새밭을 가르며 구불구불하게 길은 이어졌고
길가의 낡고 허름한 몇 채의 폐건물이
산록의 잃어버린 전설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었다.
때로 풀섶 아래로
때로 넓은 억새밭 여기저기로
야생화는 무더기로 피었고
지천으로 피어난 억새의 바다위로
바람은 부드럽게 출렁거렸다.
그 위로 햇살은 튕기고 부서져 은빛으로 반짝였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목이 먹먹하게 메어왔다.
저 넓은 대지위로
마냥 뛰놀고 뒹굴었을
아득한 옛날의 원초적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듯한 안도와 감격이 밀려왔다.
저 하늘과 땅 사이의 스스로 그러한 모든 것에 비추어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文明)이란 얼마나 왜소하고 초라한 것이랴?
깎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통나무가 주는 질박(質樸)한 위안을
어찌 닳고 닳아 반질거리는 인간(人間)의 문명에 비하랴...,
오후 2시 50분
샘물산장에 도착하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파전을 한 접시와 동동주 두병을 비웠다.
알딸딸한 취기가 몰려왔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든가.
산장의 마당 한켠에 엎드린 견공(犬公)은
이 산록(山麓)의 스스로 그러함을 닮은 듯
일 없음으로 일을 삼는 도인(道人)의 모습이었다.
얼마쯤 평탄한 임도를 따라 걷다가
오른쪽으로 빠져 금덕암 계곡으로 이어지는 숲길로 들어섰다.
숲은 울창하게 우거져 어두컴컴하였고
완만한 내리막길이 기분 좋게 이어졌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가 이어졌고
그 길은 우리가 출발한 주암마을 주차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오후 4시 30분 산행이 끝났다.
다시 울산으로 돌아갈 채비를 끝내고
차에 오르기 전 문득 고개를 돌려 보니
가을햇살이 서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채
길게 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2007년 10월 6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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