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선감
덕산(德山 : 780~865)은 검남(劍南)사람으로 속성은 주(周)씨, 법명은 선감(宣鑑)이다. 용담(龍潭)선사의 법을 이었다. 일찍 율장(律藏)에 정통하였고, 후에는 <금강경(金剛經)>에 통달하여 '주금강(周金剛)'이라 불릴 만큼 '금강경'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제자를 가르칠 때에 봉(棒)을 자주 사용하여서 임제와 더불어 '덕산봉 임제할(德山棒 臨濟轄)'이라 불리었다.
덕산이 아직 용담을 만나기 이전의 일이었다. 자신이 대단한 불교학자임을 자처하고 있을 때 남방(南方)에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선종(禪宗)이 성행한다는 소문을 듣고 늘 화가 나 있다가 어느 날 자신이 직접 쓴 <금강경청룡소초(金剛經靑龍疏抄: 금강경 해설서)>를 짊어지고 남쪽으로 떠났다.
도중에 예주에 이르렀을 때에 마침 점심때가 되어서 길가에 떡을 팔던 노파에게 다가가서 떡을 사려고 했다. 그러자 노파는 떡을 팔 생각은 하지 않고 덕산의 등에 진 짐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스님, 등에 짊어진 것이 무엇이우?"
"네 금강경을 해설한 청룡소초라고 합니다."
그러자 노파는 덕산의 얼굴을 보더니 말했다.
"제가 스님께 금강경에 대해서 물어 볼 터이니 스님께서 대답을 하시면 내 돈을 받지 않고 떡을 드리겠으나, 만약 스님께서 답을 못하시면 오늘 떡은 팔지 않겠소."
덕산은 내심 코웃음을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내에서도 금강경이라면 덕산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덕산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시오."
그러자 노파가 물었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 과거의 마음에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에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에도 얻을 수 없다)이라고 했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심(點心 : 덕산이 떡으로 점심을 하려고 한 것)하시렵니까?"
금강경에서는 전국에서 그를 따라올 수 없다고 하는 주금강이 떡 파는 할머니가 물은 금강경 한 구절에 딱 걸려서 한 마디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덕산은 떡을 얻어먹지도 못하고 참담한 마음으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용담(龍潭)선사를 찾아갔다. 객사에서 용담을 기다리던 덕산은 한참을 기다려도 용담이 오지 않자, "용담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래건만 막상 와보니 용도 없고 연못도 없구나!"하고 외쳤다.
그러자 방안의 병풍 뒤에서 용담이 나오며 "그대는 이미 용담에 와 있노라”하였다.
둘은 앉아서 법담을 나누다가 밤이 이슥해져서 덕산이 객사로 돌아가려하자,
용담은 호롱불을 켜서 덕산에게 주었다. 덕산이 받으려 하자 용담은 호롱불을 '훅' 불어서 꺼버렸다.
그러자 덕산은 용담의 뜻을 알지 못하고 "스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용담은 다시 불을 켜서 덕산에게 건네주었다.
덕산이 받으려하자 다시 불어 꺼버렸다. 그제야 덕산은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덕산은 마당에서 자신이 짊어지고 온 청룡소초를 몽땅 불태워버리고는 30년을 용담선사 곁에서 머물면서 공부하다가 용담의 법을 이었다.
후일 덕산은 함통(咸通) 원년(860) 무릉(武陵)태수의 청으로 비로소 덕산에 살게 되었다. 이때부터 천하의 선객들이 모여들어 항상 5백명이 넘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스님이 걸어오는 것을 보자 덕산은 얼른 방문을 닫아 버렸다. 스님이 와서 문을 두드리니 덕산이 물었다.
"누구냐?"
"사자(獅子) 새끼입니다."
이에 덕산이 얼른 문을 여니, 그 스님은 넙죽 절을 하였다. 이때 덕산은 그의 목덜미에 올라타고 외쳤다.
"이 사자새끼야, 어디 갔다 오느냐?"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보리(菩提: 지혜)입니까?"
덕산이 크게 꾸짖었다.
"가거라. 여기에 똥 싸지 말고."
덕산이 암두(巖頭)에게 물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래 모르는 것을 잘 간직하도록 하라."
"모르는데 간직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이에 덕산이 쏘아붙였다.
"무쇠 말뚝 같구나!"
어느 날 용아(龍牙)가 와서 덕산에게 한 마디 던졌다.
"글 배우는 사람이 칼을 들고 와서 스님의 목을 베려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대 같으면 어떻게 손을 쓰겠는가?"
"이미 스님의 머리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용아의 말에 덕산은 묵묵부답이었다. 후일에 용아가 동산(洞山)에게 이 일을 자세히 진술하니 동산이 말했다.
"떨어진 덕산의 머리를 이리 가져오너라."
용아는 이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하루는 덕산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입을 열어 물어도 틀리고 묻지 않아도 틀린다."
이에 어떤 스님이 얼른 절을 하자 덕산이 후려쳤다.
"절을 하는데 왜 때립니까?"
이에 덕산이 호통을 쳤다.
"그대가 입을 열도록 기다려서 무엇 하겠는가?"
덕산이 열반에 들며 대중들에게 말했다.
"헛됨을 찾고, 메아리를 뒤쫓기에 그대들의 심신만 괴롭구나! 꿈을 깨듯이 허물을 깨달아야 하는데, 깨달은 뒤에는 무슨 일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