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산 별곡(神佛山 別曲)[자수정 입구-신불공룡-신불산-공비지휘소-파래소
산림(山林)에 병(病)이 깊어 시름시름 앓던 적에
백암거사(白巖居士) 손에 끌려 세월에 들었더니,
일 년이 넘어가도 병 나을 줄 모르겠네.
구월 열흘날에 신불산을 간다하여
밤새 잠 못 자고 창밖을 흘깃 보니
추적추적 내리는 비 애간장 다 녹인다.
새벽에 얼핏 든 잠 아침에 깨어보니
비는 그쳤으되 안개가 무성하다.
몸은 무거워도 마음은 새털 같네.
철따라 피어난 코스모스 뒤로 하고
세월 태운 딩딩당이 주차장을 떠나가니
안개는 더욱 짙고 창밖은 꿈결 같다.
자수정 뒤로 하고 숲속으로 들어가니
바람은 불지 않고 안개만 무성하다.
숨은 턱에 차고 발길은 천근만근
가쁜 숨 몰아쉬고 비지땀을 움쳐내니
홍진(紅塵)에 시든 몸이 이제야 살아나네.
안개는 흩어지고 숨은 볕살 돋아온다.
한줄기 새소리에 몇 발짝 내닫으니
조각칼로 새겨낸 듯 붓으로 그려낸 듯
은가루를 흩뿌린 듯 먹물을 풀었는 듯
구름 물결 넘실대는 운해(雲海)의 바다위로
일망무제(一望無際) 기암괴석(奇巖怪石) 봉봉(峰峰)에 펼쳐 있네.
맺히고 펼친 기운은 조물주(造物主)의 솜씨던가.
뒷산이 작은 줄도 내 아직 모르는데
어화! 조물주는 무슨 말이 하고 싶어
천산만학(千山萬壑)에 그 입김 서려 있네.
바람이 건듯 불어 은가루 흩날리니
한쪽은 산이요 또 한쪽은 바다여라
차라리 저 구름아래 세상이 꿈 일러라
한 구비 돌아들고 또 한 구비 넘어가니
새소리 청아하고 암향(巖香)이 은은할 제
저만치 달려드는 신불[神火]이 뜨겁구나.
지나치는 누룩냄새에 발걸음 무거워라
여기가 거긴데 어디 가서 먹자 하노.
뉘라서 알리요 방앗간 진조루(眞鳥淚)를
식후(食後) 포만한 귀에 이 소리 무슨 소리
산 아래 한 녹마(鹿馬)가 호가호위(狐假虎威) 한다는데
이 귀를 어찌 씻노 영수(穎水)가 너무 멀다.
신불[神火]이 부는 바람에 남서(南西)로 내달으니
왕봉골 청석골이 여기서 갈라지고
말 잔등에 미끄러지듯 허위허위 내려가네.
억새는 아직 젊고 쑥부쟁이 만발한데
간월재 넘은 구름 산허리에 걸려 있네.
산제비 건듯 날아 비에 씻긴 비석 하나
무슨 원한 그리 깊어 이 산중에 들었던고
예서 쏜 총알이 팔각정에 닿을런가.
산은 말이 없고 옛사람도 흔적 없다.
왕봉골 내린 물이 백년을 이었으니
은구슬 우르르 옥쟁반에 떨어지네.
귀 먹은 이무기는 어디에서 노닐런고
큰비를 얻지 못한 이무기를 생각하니
처량하다 네 신세 내 너를 닮아있어.
시름겨워 마신 술이 목구멍에 걸렸구나.
아서라. 공명(功名)이 날 꺼리고 부귀(富貴)가 날 피해도
산천(山川)이 내 친구고 세월(歲月)이 내 벗인데
대장부(大丈夫) 백년행락(百年行樂)이 이만한들 어떠리.
2005년 9월 11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