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국은 서양에 역전 당하게 되었을까['회남자&황제내경: 하늘, 땅, 인간 그리고 과학'을 읽고]
왜 문명(文明)의 모든 부문에서 앞서 있던 중국(中國)이 17세기를 경과하면서 갑자기 서구 유럽에 역전(逆轉) 당하게 된 것일까. 그 핵심적인 이유는 과학(科學)이었다. 그렇다면 중국에는 과학이 없었는가. 사전적 정의, 그러니까 ‘사물의 현상에 관한 보편적 원리 및 법칙을 알아내고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식 체계나 학문’을 과학이라고 한다면, 중국에도 분명 과학은 있었다. 그렇다면 중국의 전통적인 과학과 서구 유럽의 근대화를 이끈 과학혁명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주지(周知)하는 바와 같이, 서구 유럽에 있어서도 중세(中世)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이 지배하고 있었고 그것은 여전히 질적(質的)인 세계였다. 그러나 갈릴레이와 뉴튼, 데카르트를 경과하면서 자연에 대해 수학적으로 설명가능한, 그리하여 계량화하고 조작가능한 양적(量的)인 지식체계가 수립되었고, 이에 따라 자연에 관한 지식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근대 서구 유럽이 경험한 자연과학(自然科學) 혁명(革命)의 핵심 내용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이 세계의 모든 것이 계산가능하고 조작가능한 기계와 같은 것으로 보는 기계적(機械的) 자연관이다(그 기계의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시계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전통적인 과학의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같은 동양권에 속하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개념들인 기(氣), 음양(陰陽), 오행(五行)의 체계로 볼 수 있다. 동양의 전통과학에서는 이 세 가지 기본 범주를 가지고 인간을 포함한 자연현상을 설명하거나 예측했다. 이 세 가지 범주는 제각기 발전하다가 동양 전통 과학사상이 완성되었던 전한(前漢 BC 206~AD 9) 시기에 이르러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개념들로 결합하게 된다.
기(氣)란 ‘눈으로 볼 수 없으나 분명하게 느껴지는 어떤 힘이나 작용을 가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인간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것이 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기 때문에 기를 감지하는 주체인 인간과 그 대상 사이의 분리가 불가능하고, 이는 곧 객관화 즉 양적인 것으로 측정하여 표현하기 어렵다.
음(陰)과 양(陽)은 서로 대립되지만 동시에 서로 의존해야만 이해될 수 있는 항목들을 포괄하는 일반적 용어로 사용되는데, 인간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것이 그 자체 내에 음과 양을 포함하고 있고 그 배합의 양태나 정도에 따라 사물의 다양성과 변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논리구조가 잘 나타나 있는 서물(書物)이 바로 주역(周易)이다. 주역이라는 명칭 자체에 이미 변화라는 의미가 들어있거니와, 주역의 64괘(掛)는 곧 음효(陰爻)와 양효(양효)의 배합 양태 및 배합 정도의 차이에 따라 성립하는 것이다.
한편, 오행(五行)이란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이라고 하는 상이한 속성을 가진 다섯 가지 요소로 자연현상뿐만 아니라 사회현상도 모두 설명하는 이론체계를 말하는데, 모든 사물을 다섯 가지 요소 중의 하나로 배치함으로써 사물을 분류하고 조직하는 원리로서 작용함과 아울러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의 작용을 통해서 변화를 유도하고 예측하는 원리로서도 작용하게 된다.
이와 같은 기, 음양, 오행의 체계는 세계를 구성하는 각각의 개체가 질적(質的)인 고유성(固有性)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질적인 세계관에 입각하고 있고, 각각의 개체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이 유기적 전체로서 존재한다고 보는 점에서 유기체적(有機體的)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아울러 이와 같은 체계는 자연현상의 구조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나 육체의 구조, 정치 체제의 구조에까지 일관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논리적 세계관이 아니라 유비적(類比的)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세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서 대우주(大宇宙)이고, 한 개체로서의 인간 역시 그 구조가 대우주와 동일한 소우주(小宇宙)이며, 대우주와 소유주는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삼라만상 모든 것이 거대한 인드라 망(網)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하나 속에 전체가 다 들어 있고 전체는 곧 하나’[一卽多, 多卽一]라고 보는 불교의 화엄철학(華嚴哲學)과도 그 맥락이 서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체계는 남송(南宋)의 주희(朱熹)에 이르러 거대한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담론체계(談論體系)로까지 고양(高揚)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성리학(性理學)이다. 주희는 종래의 기, 음양, 오행의 체계를 태극(太極)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통해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인간의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성품인 성(性)과 사물의 이치인 리(理)가 서로 같다는 성즉리(性卽理)의 논리를 통해 인간의 윤리(倫理)와 도덕(道德)까지도 자연의 질서와 일치시키려고 시도한 것이다. 보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주희는 인간의 윤리를 고양하고 도덕적 실천성을 담보하기 위해 그 근거를 우주만물, 곧 자연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자연(自然)을 인간화(人間化)함으로써 자연을 자연 그 자체로 볼 수 없게 만들고 말았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서구 근대의 과학과 중국, 나아가 동양 전통의 과학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이고, 왜 동양은 근대에 이르러 서유럽에 역전 당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결국 서구 근대의 기계론적 자연관과 동양의 유기체적 자연관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의 몸을 하나의 기계로 보는 서구적 관점에서는 얼마든지 사람의 몸을 해부할 수 있고 또 자연을 하나의 자원(資源), 또는 광물(鑛物)의 집적체(執靮體)로서 파악(把握)할 수 있었음에 반하여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불감훼상(不堪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라는 동양적 관점에서는 머리 터럭 하나라도 함부로 할 수 없었고, 자연 역시 인간이 그 품에 깃들어 사는 존재여서 묫자리 하나를 파더라도 개토제(開土祭)를 지내 그 산에 깃든 신령(神靈)을 위로(慰勞)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구한말 단발령(斷髮令)이 내려졌을 때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吾頭可斷 此髮不可斷]”이라며 저항했을까. 상황이 이러하니 인간의 몸이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고 관찰하고 실험할 수 있는 시각이 형성될 여지가 없을 수밖에-----.
한편, 최근에는 서구 자연과학문명이 한계상황에 봉착(逢着)하면서 그 대안(代案)으로 동양의 유기체적 자연관에 눈을 돌리는 신과학운동(新科學運動)이 대두하고 있으나, 동양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그대로 부활시키기에는 여전히 일정한 한계가 있다. 모든 것을 양화(量化)함으로써 객관화시키고 조작가능하게 하는 서구 근대과학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상에서 논의한 내용들을 「회남자(淮南子)」와 「황제내경(黃帝內經)」이라는 중국고전의 핵심적인 구절들을 통해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내용들을 서구 근대 과학의 프리즘을 통해서 검토함으로써 그 구체적인 내용과 특징을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 아닌가 한다. 아울러 책의 말미에 부기된 참고서적은 좀 더 깊은 공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2014년 11월 27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