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혹은 상실의 의미[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에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이다. 화살을 가지고 다니며 날개가 달린 소년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영어의 큐피드(Cupid) 뿐만 아니라 로마의 아모르(Amor) 역시 에로스를 일컫는 말이다. 큐피드가 쏜 화살을 맞은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에로스의 탄생 신화는 무려 일곱 가지나 된다. 그 중에서 에로스가 포로스와 페니아의 아들이라는 신화는 풍요와 결핍이 공존하는 사랑의 속성을 기가 막히게 대변해준다. 포로스는 풍요의 신이고 페니아는 결핍의 신이다. 즉, 언제나 배부른 포로스와 늘 굶주리는 페니아는 극명히 대비되는 신인 것이다. 아프로디테의 생일파티가 열린 날, 포로스는 일찌감치 참석해 배부르게 먹지만 페니아가 도착했을 때는 음식이 다 떨어진 뒤였다. 배부르게 먹고 곤히 잠든 포로스를 본 페니아는 포로스와 결합하면 더 이상 배를 곯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를 범한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에로스다. 결국 에로스는 결핍에서 풍요로 나아가려는 끊임없는 에너지의 다른 이름이다.
이 책 <여자가 없는 남자들>은 2005년 <도쿄 기담집> 이후 9년 만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집이다. 제목처럼 ‘여자 없는 남자들’을 모티프로 삼은 이번 소설집에는 말 그대로 연인이나 아내로서의 여성이 부재하거나 상실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여기서 여자란 남자가 정서적 육체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여성성을 가진 존재'라고 볼 수도 있고, 보다 보편적으로는 불완전한 한 존재를 완전하게 하는 다른 어떤 존재로 볼 수도 있겠다.
'독립기관'의 주인공은 때로 하룻밤 상대를 만나기도 하지만 진심을 공유하는 사이는 아니다. 성형외과 의사인 그는 높은 수입에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여러 여자를 동시에 만나기도 하면서 육욕을 충족하지만,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며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단숨에 마음을 빼앗긴 매력적인 여자를 만나는데 그녀는 이미 결혼한 상태의 유부녀다. 상사병에 걸린 그는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차갑게 버림받고 좌절하여 삶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른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인공은 조연을 주로 맡는 중견 배우이다. 그는 아내와 원만한 부부생활을 해왔지만, 그녀가 자신을 속인 채로 다른 남자들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부부 사이가 망가질 것을 우려하여 '출중한 연기력'을 발휘하며 마치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맡은 자상한 남편의 '역할'을 유지한다. 동시에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갖는 아내를 바라보며 내심 깊은 절망에 빠진다. '자신에게는 없는 어떤 매력'을 가진 남성이 아내의 마음을 끌어당겼을 거로 생각하며, 그에게는 결핍된 그 '매력'이 무엇인지 몰라서 자괴감에 휩싸이는 것이다.
'사랑하는 잠자'에서는 아무런 기억도 없이 침대에서 눈을 뜬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잠자'라는 자신의 이름이 전부인 그는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와도 같은 상태이다. 텅 빈 건물에서 정신을 차린 직후에 그는 '전쟁이 발발한 세상'을 홀로 마주하게 된다. '사랑을 주고받을' 존재인 가족은 집에 그를 남겨둔 채로 모두 대피를 위해 떠나버렸다.
결국 본문에 실린 짧은 이야기들을 하나로 꿰뚫는 핵심은 '결핍'과 ‘상실’이다. 주인공들은 각자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관계에 있어 모두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뼈아픈 '상실'을 경험한 인물들이다. 잃은 뒤에서야 빈자리를 깨닫는 역설적인 상황의 나열은 '결핍'과 ‘상실’을 통해 ‘풍요'와 ‘완전함’의 의미가 온전하게 드러난다. 그리하여 결핍의 상태에서 풍요의 상태로 끊임없이 나아가려는 에너지의 다른 이름인 에로스가 바로 사랑의 신인 것처럼, 이러한 결핍과 상실을 통해 사랑의 본질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밖에 이 책과 전작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하루키의 미덕은 자연스럽게 술술 읽히는 이야기의 흡입력과 특정한 시공간을 넘어서 두루 통할 수 있는 정서적 보편성, 그리고 가볍고 투명하고 감각적인 도시적 감수성이 아닐까 싶다. 하루키가 세계적으로 엄청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다.
2014년 10월 24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