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및 여행기

육체적 천민성과 정신적 귀족성의 통합

월지 2014. 1. 13. 12:33

 

 

 

겨울의 한복판이다.

찬바람이 몸과 마음을 한층 움츠러들게 한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기다려온 휴일을 방구석에 앉아 그냥 흘려 보내기에는 뭔가 억울하다.

 

 

 

 

하여 다시 산으로 든다.

초입부터 된비알이 호흡을 거칠게 하지만

산의 질감이 다리를 통해 몸으로 전달되며

점차 산과 몸이 하나의 리듬으로 진동한다.

 

 

 

 

우리 삶에 공짜란 없다.

몸으로 느끼는 만큼의 삶만 주어질 뿐이다.

이 자명한 이치를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산다.

산으로 들어 직접 몸을 굴려 보고서야 이 뻔한 이치를 깨닫는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바람이 분다.

겨울의 입김. 그 거침없는 이 계절의 징표가

항온동물의 비애를 실감으로 환기시키고.

그럼에도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안도가 생의 벅찬 환희를 길어올린다.

 

 

 

 

건너편 산비탈은 온통 눈이다.

저 눈으로 인해 산은 흑과 백의 선명한 콘트라스트로

오히려 더 깊어진다.언뜻 가믈한 종교적 깊이까지 내비친다.

 

 

 

 

 

산마루로 올라서니 눈이 가득하다.

더러 바람이 지나간 길목에는 무릎높이로 쌓였다.

그 미답의 순백이 발걸음을 주저하게 한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비껴드는 나만의 사원.

그 속에는 화덕이 내뿜는 빨간 열기와

구수하게 익어가는 군고구마 냄새. 그리고

부드럽게 두귀를 애무하는 음악의 선율이 가득하고.

 

 

 

 

나는 어느 서양철학자의

종합적 인식론에 두눈을 박고

육체적 천민성과 정신적 귀족성의

어설픈 통합을 시도한다.

 

2014년 1월 12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