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김밥
엄마의 김밥
국민학교 4학년 봄 소풍날이었나 보다. 개구리 소리 와글거리는 물 잡힌 논에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 파스텔 톤으로 물든 산 그림자가 그대로 비쳤다.
울긋불긋 피고 지는 꽃들과 날로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풀과 나무들이 발산하는 봄 비린내가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켰다.
집을 나설 때 김밥을 쌌다는 엄마의 말에 가슴은 한껏 부풀어 올랐고 기다려지는 건 오로지 점심시간뿐이었다. 그때만큼은 따라온 장사치들이 벌여놓은 군것질거리에도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동그랗고 까만 김 테두리 안에 하얀 쌀밥, 그리고 그 안에 노란 단무지와 하얀 계란지단, 간장에 졸여 거무스름한 오뎅과 초록색 부추, 불그스름한 당근이 가지런히 박힌 김밥. 생각만 해도 목구멍으로 꼴까닥 침이 넘어가는 그 김밥.
기대만발! 도시락 뚜껑을 열어젖히는 순간.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머리가 하얘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황급히 뚜껑을 덮고 도망치듯 숲속으로 숨어들었다. 진달래나무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며 찔끔찔끔 눈물이 났다.
엄마가 김밥을 싸준다고 했을 때부터 반신반의하긴 했지만 설마 이런 형태의 김밥인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 김밥은 대발로 동그랗게 말아서 싼 것이 아니라 김에다 밥과 반찬을 넣고 손으로 오므려 놓은 주먹밥 같은 것이었다.
그렁그렁한 눈물을 매달고 그 김밥 아닌 김밥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목구멍으로 들어가려는 김밥과 목구멍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알 수 없는 서러움이 서로 부딪치면서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짐승 같은 신음을 흘리며 그 도시락 가득한 김밥을 다 먹어치웠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그 세월 동안 그처럼 맛있는 김밥을 먹어본 기억이 나는 없다. 엄마는 40살에 날 낳으셨고 옛날 사람이라 대발로 김밥 싸는 법을 몰랐다. 손자 같은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당신이 아는 방식대로 김밥을 쌌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 같은 엄마가 싫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근대화란 미명하에 모든 것이 규격화되고 계량화되는 이 시대에 나는 옛날 엄마를 둔 덕분에 문명화되기 이전의 전통적 가치,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인간의 가치에 대해 조금은 눈뜰 수 있게 되었다.
쉰을 바라보는 중년에 이른 지금에도 나는 엄마에게 높임말을 쓰지 못한다. 그렇게 하면 엄마는 엄마 아닌 누군가가 되어버릴 것 같아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언제까지나 엄마에게는 철부지 어린아이로 남고 싶은 것이다.
2013년 4월 1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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