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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원제명기(諫院題名記)

월지 2010. 1. 25. 16:34

諫院題名記

간원제명기

 

司馬光

사마광

 

古者諫無官 自公卿大夫 至于工商 無不得諫者

고자간무관 자공경대부 지우공상 무불득간자

 

옛날에는 간언에 관한 관직이 따로 없었으나 공경대부에서부터 상공인에 이르기까지 간언하지 못하는 자가 없었다.

 

漢興以來 始置官 夫以天下之政四海之衆得失利病 萃于一官 使言之 其爲任 亦重矣

한흥이래 시치관 부이천하지정사해지중득실리병 췌우일관 사언지 기위임 역중의


한(漢) 나라가 흥한 이래 처음으로 간관을 두었는데, 천하의 정치와 온 백성의 득실과 이해를 하나의 간관에게로 집중시켜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했으니 그들의 임무 수행이 또한 중요해졌다.

 

居是官者 當志其大 捨其細 先其急 後其緩 專利國家 而不爲身謀

거시관자 당지기대 사기세 선기급 후기완 전리국가 이불위신모

 

이 관직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그 큰 것에 뜻을 두고 그 자질구레한 것을 버리고 그 급한 것을 앞세우고 그 급하지 않은 것을 뒤로 미루어 오직 국가를 이롭게 해야 하고 자신을 위해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彼汲汲於名者 猶汲汲於利也 其間相去何遠哉

피급급어명자 유급급어리야 기간상거하원재

 

그들이 명예에 급급한 것은 사사로운 이익에 급급함과 같으니 그 두 가지 일 사이의 거리가 어찌 멀다고만 하리오.

 

天禧初 眞宗詔置諫官六員 責其職事

천희초 진종조치간관육원 책기직사

 

천희(天禧: 송 진종의 연호 1017년 ~ 1021년) 초에 진종(眞宗: 북송의 3대 황제) 황제께서는 간관 6명을 두어 그 직책에 책임을 지웠다.

 

慶曆中 錢君始書其名於版 光恐久而漫滅 嘉祐八年 刻著于石

경력중 전군시서기명어판 광공구이만멸 가우팔년 각저우석

 

경력(慶曆: 송 인종의 연호 1041년 ~ 1048년) 연중에 간관인 전군(錢君)이 처음으로 목판에 그들의 이름을 적어 두었으나, 나 사마광은 오래 지나면 지워져 없어질까 두려워 가우(嘉祐: 송 인종의 연호 1056년 ~ 1063년) 8년에 돌에 새겨두었다.

 

後之人 將歷指其名而議之曰 某也忠 某也詐 某也直 某也曲 嗚乎 可不懼哉

후지인 장력지기명이의지왈 모야충 모야사 모야직 모야곡 오호 가불구재

 

후세 사람이 장차 그 이름들을 두루 가리키면서 평가하기를, “누구는 충성스러웠고, 누구는 사특했으며, 누구는 곧았고, 누구는 굽었다”고 하리라. 아! 가히 두려워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