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및 여행기

백운산에는 흰구름만 오락가락하였다[탑골-삼강봉-백운산-삼익목장 산행기

월지 2007. 12. 2. 08:54

 

백운산과 삼강봉의

동쪽 사면은 울주군 두서면 관할이다.

다시 그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와, 미호, 전읍, 인보, 선필 등의

마을들이 산자락을 끼고 쭉 이어진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두동, 두서 2개 면(面) 출신 학생들이 다녔으므로

백운산 자락의 이 마을들에도 동기들이 많다.

지금도 한 달에 최소한 한번 이상은 만나는 친구들이

각각의 마을마다 한명 이상은 있다. 


다시 말해 백운산과 삼강봉은

낯선 동네의 산이 아니라 친구의 고향에 있는 산으로

내 고향의 산만큼이나 친숙하다는 말이다.


주중의 잦은 음주와 불면으로 몸은 파김치가 되고

긴장이 풀린 휴일 아침은 그만큼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느지막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산행을 준비하고

들머리인 내와 탑골에 도착하니 벌써 12시가 다 되어있었다. 

 


‘탑곡공소’라는 팻말이 서있는 공터에 차를 세웠다.


사람도 얼마 살지 않는 이 산골짜기에

천주교 공소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조선 후기 천주교에 대한 숱한 박해가 가해질 때

수많은 신자(信者)들이 관헌(官憲)의 손길을 피해

숨어들어와 신앙촌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지 중의 오지라는 말이다.


지금이야 말끔하게 포장된 2차선 도로가

경주, 울산, 언양 등 대처(大處)로 연결되어 있지만,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이곳은 비만 오면 끊기는 좁은 비포장도로밖에 없었고

빨간색 시외버스가 하루에 두 번밖에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 친구들은 중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자취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찍부터 부모의 손에서 벗어나 생활해서 그런지

조숙하고 별난 애들이 많았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길은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때로 급하게 때로 느리게 고도를 높여갔다.

 

 


처음 짙은 송림(松林)사이를 헤집고 들던 길은

조금씩 고도가 높아지면서

참나무와 자작나무 따위 잡목의 숲속으로 이어졌고,

깔비(솔가리)로 푹신하였던 길은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적갈색 낙엽으로 사박거렸다.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산의 질감은 포근하였고

술과 불면(不眠)으로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던 긴장이

조금씩 이완(弛緩)되기 시작했다.

 


줄곧 산줄기를 타고 올라가던 길이

어느 순간 산허리를 따라가더니

제법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골짜기로 이어졌다.

 

 


골짜기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태화강 발원지 탐사기념’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고

그 아래 푸른 이끼가 잔뜩 낀 돌 틈으로

물이 졸졸졸 흘러내리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탑골샘’이었다.

 

 


다시 계곡을 벗어나

산줄기를 따라 얼마를 더 올라가자

사방이 탁 트이며 세 갈래로 뻗어나간 산줄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삼강봉(三江峰)이었다.

 

 

 

 


멀리 경주 단석산을 관통하며 달려내려 온

낙남정맥의 산줄기는 여기서 한차례 숨을 고른 후

주맥(主脈)은 남쪽으로 백운산과 고헌산을 거쳐

가지산으로 치닫고, 동북쪽으로 분기한 지맥(支脈)은 천마산과 치술령을 지나 경주 토함산으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포항 호미곶으로 내닺는다. 

일명 호미지맥(虎尾支脈)이다.

 


삼강봉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낙동정맥의 주능선답게 사람들의 잦은 발길에

다져져 반들반들하였다. 

 


그래도 높은 고도는 어쩔 수 없는 듯

길바닥 곳곳이 얼고 부풀어 올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삼강봉에서 능선을 타고 20여분을 걸어

오후 2시 5분. 백운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남서쪽으로 고헌산과 가지산이

햇살에 빗겨 몽롱한 자태로 웅크리고 있었다.

 


백운산 정상을 뒤로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법 심한 내리막길이 시작되었고

그 내리막길 왼쪽으로 샛길이 있음을 알리는

리본들이 요란하게 매달려 있었다.

 


낙남정맥 주능선에서 벗어난 길은

부드럽고 기분 좋은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산을 오를 때 쉴 새 없이

의식의 표면위로 떠오르던 산 아래 세상의

복잡한 생각들이 잦아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넓고 푸른 하늘 위로

몇 조각의 흰 구름만 한가로이 떠도는 듯

마음은 고요해지고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산의 포근한 숨결마냥

호흡은 부드러워졌다. 

 


나 홀로 산행이 아니고는

맛 볼 수 없는 황홀경이었다.


키 작은 소나무 사이로

따스한 오후의 햇살이 내려앉은

작은 공터에 주저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평소 무엇에 쫓기듯 후다닥 해치우는 점심과는 다른

투박하면서도 오묘하고 고졸하면서도 심후한 미각이

혓바닥을 자극하였다.

 

 


식사를 마친 공터를 벗어나 몇 발짝 걷지 않아

누렇게 빛이 바랜 억새의 물결이 눈앞에 펼쳐졌다.  

삼익목장 터였다.

 

 


목장 터 남쪽으로

이채로운 모습의 소나무 한 그루가 섰고

그 너머로 상선필이

골짜기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와 있었다. 

 

 


길은 목장을 동북쪽으로 가로질러

작고 아담한 봉우리로 이어졌다.

봉우리 정상에는 ‘선재봉’이라고 쓰인

나무 팻말이 오도카니 매달려 있었다.

 

 


사박사박한 낙엽의 주단을 밟으며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자

갑자기 잘 닦여진 임도가 나타났다.

내와와 선필을 연결하는 길이었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그 임도를 따라 걸었다.

 

 

 

 

 


길은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산굽이를 돌아갔고

길가에는 철없이 피어난 쑥부쟁이가 채 시들지도 못하고

추위에 파랗게 질려있었다.

 

 

 


벽운암과 구화사를 알리는 팻말을 지나자 

탑골샘에서 발원한 물이 제법 내를 이룬 개울이 나왔다.

이 개울물은 미호천을 지나고 대곡댐과 사연댐을 넘어

태화강 본류로 이어질 터였다. 

 


조그만 다리를 건너 얼마를 더 걸어가자

완연하게 기울어져 기운을 잃어버린 햇살이

산행 들머리에 비스듬히 비껴 있었다.


오후 4시 정각이었고,

그때까지 나는 완벽한 황홀경에 사로잡혀 있었다. 


2007년 12월 1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