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및 여행기

누가 코끼리 어금니를 보았는가.[절골-시루봉-천문대-법룡사-용소동 산행기]

월지 2007. 1. 14. 20:41

 

 

 

 

 

 

울산 산림(山林) 최대 조직은 세월방(歲月幇)이다. 이들은 40~50대의 중년인들이 주축이 돼 주말마다 영남 알프스 일대와 근교산을 오르내리며 심신을 수련하고 있다. 세월방 문도(門徒)들의 수는 900명을 넘기고 있으며 방주(幇主)는 낭만광인(浪漫狂人)이다. 초창기에는 낭만광인의 단일지도체제로 운영되다가 최근에는 몰려드는 문도들과 그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하였다.


그런 세월방이 정해년(丁亥年)으로 접어들면서 종래의 영남알프스에서 인근의 영천, 포항, 청도, 기장까지 그 활동반경을 확장하였다. 그리고 그 확장된 활동반경의 첫 입산처(入山處)로 잡은 것이 영천 보현산이다. 보현산(普賢山)! 육산(肉山)으로 거대한 코끼리를 닮았다고 해서 코끼리가 상징하는 보현보살(문수보살과 함께 석가모니불을 좌우에서 보필하는 협시보살로 이치와 명상과 실천을 관장함 - 편집자 주)에서 비롯된 불교식이름이다. 

 

 

 

 


2007년 1월 13일 토요일 오전 9시 50분. 세월 전용마차 딩딩당이 경북 영천시 화북면 정각리 절골마을 입구에 세월 문도 23인을 부려놓았다. 코끝에 와 닿는 공기가 매서웠다. 모두들 신발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입산준비를 마친 후 조편성에 들어갔다. 내공(內攻)이 심후하고 경신술(輕身術)이 뛰어난 대부분의 문도들은 오른쪽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우회 경로를 택하고, 내공이 일천한 나머지 문도들은 거리가 짧은 왼편 계곡쪽으로 오르는 지름길 경로를 택했다.

 

 

 

 


지름길 경로를 택한 7인의 문도들은 절골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가운데에는 수호신격인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10여호의 인가가 흩어져 있었다. 마을의 중심을 관통하는 개울가에는 동네사람들이 모여 돼지를 잡고 있었다. 돼지껍질을 벗겨 털을 태우느라 매캐한 냄새가 났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 고추밭 한가운데에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내려앉은 고색창연한 석탑 1기가 푸른 하늘을 이고 서있었다. 마을 이름이 절골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던 임도를 계속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숲길로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소나무가 울창하더니 조금씩 고도가 높아짐에 참나무와 잡목으로 숲의 수종이 바뀌었다. 길이 계곡에서 조금씩 멀어질수록 경사마왕(傾斜魔王)의 심술은 그만큼 심해졌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부터는 동장군(冬將軍)과 합세한 대풍왕(大風王)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지름길조의 문도들 대부분은 경험 많고 자상한 쟁이 분타주(分舵主)의 지휘아래 경사마왕과 대풍왕의 공격을 잘 헤치고 나아갔다. 그러나 제일 후미에 쳐진 월지는 상황이 달랐다. 그는 숲길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호흡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경사마왕이 조금씩 공격의 강도를 높이자 그의 다리는 후들거리고 걸음은 비틀거렸다. 거기다 대풍왕이 동장군의 도움을 업고 장풍(長風)을 날리자 그의 내장(內臟)은 뒤틀리고 기혈(氣血)은 심하게 역류(逆流)하였다.

 


그는 즉시 군데군데 잔설(殘雪)과 낙엽이 깔린 땅바닥에 주저앉아 운기조식(運氣調息: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르고 온몸에 기를 운행하는 호흡수련법 - 편집자주)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초부터 아무런 내공의 축적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주화입마(走火入魔: 호흡수련중에 나타나는 일종의 부작용 - 편집자주)에 빠질 것 같았다. 그는 니고단(馜高丹: 연기를 태우면 진한향기가 나와 사람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신비로운 물질 - 편집자 주)의 효험을 빌리기로 하고 쌈지에서 니고단 한 개피를 꺼내 불을 붙였다. 파란연기가 대풍왕의 장풍에 실려 흩어지면서 몽롱한 기운이 온 몸으로 퍼져 나갔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까..., 긴장되어 있던 근육의 서서히 이완되었다.


그는 니고단에 붙은 불을 끄고 일어섰다. 새로운 기운이 일었다. 몸에서 힘을 빼고 경사마왕과 대풍왕의 공격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몸을 내맡겼다. 대풍왕이 쒱쒱하는 파공성(破空聲)을 일으키며 일정한 시차를 두고 차갑고 매서운 바람을 몰아 그를 덮쳐 왔지만 그는 개의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의외로 몸은 가벼워졌고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도 배가(倍加)되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흡연몰아보법(吸煙沒我步法: 연기를 마시고 자신을 잊어버린 상태에서 걸어가는 보법 - 편집자 주)이라는 일종의 경신술[輕身術: 몸을 가볍게 하여 신속하게 이동하는 방법. 일반적으로 심후한 내공이 있어야 시전(施展)할 수 있다. - 편집자 주]을 터득한 것이었다.

 

 


오전 11시. 그는 드디어 숲길을 벗어나 능선으로 올라섰다. 능선에는 유마차(油馬車)도 충분히 통행이 가능할 만큼 넓은 길이 나있었다. 그러나 앞서 갔던 지름길조의 문도(門徒)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그 넓은 길을 따라 걸었다. 대풍왕도 숲속을 떠난 능선까지 그를 추적하지는 못하였고 경사마왕의 위세도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그는 머릿속에 들어 있던 온갖 번뇌망상(煩惱妄想)들을 하나씩 꺼내 따스한 햇살과 투명한 대기중에 노출시켰다. 그 번뇌와 망상들은 밖으로 나오자말자 작은 부스러기로 쪼개지더니 바람에 실려 날려갔다. 그의 머리는 텅 비고 몸은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오전 11시 40분 드디어 보현산 정상 시루봉에 도착하였다. 정상은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산림분파 중 하나가 시산제(始山祭)를 지내는 듯하였다. 그가 도착하였을 때에는 시산제가  끝나고 자리를 말고 있었다. 쟁이 분타주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점심식사는 천문대에서 할 것이니 바로 천문대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떠났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시루봉에서는 시야(視野)에 거침이 없었다. 하늘은 추운 날씨만큼 시리게 푸르렀다. 서(西)로는 어슴프레한 이내가 길고 희미한 띠를 이루며 저 멀리 팔공산의 준봉들을 덮고 있었고, 동(東)으로는 첩첩의 산들이 서로의 어깨를 끼고 시위하며 달려가는 듯 꿈틀거리며 동해로 내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코끼리의 어금니는 보이지 않았다.

 

 

 


시루봉에서 제법 두텁게 쌓인 잔설을 밟고 300미터쯤 걸어가자 천문대가 나왔다. 몇 동의 천문대 건물 중 ‘전시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동굴(洞窟)로 들어가자 먼저 온 지름길조 문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굴 안은 따뜻하고 쾌적했다. 따뜻한 온수와 그 온수에 녹여먹는 즉석국수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준비해온 도시락을 풀고 밥을 꺼내 즉석국수에 말아 점심을 먹었다. 거기다 월지가 비장(秘藏)해온 애고홀(碍苦惚: 괴로움을 막고 황홀함을 주는 신비한 액체 -편집자 주)을 한잔씩 돌리고 나니 왕후장상의 오찬이 부럽지 않았다. 세월방 역사상 이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점심식사는 일찍이 없었으리라...,

 


오후 12시 20분 지름길조가 점심식사를 마치고 갑피(瞌避: 졸음을 쫓아주는 신비한 음료 - 편집자 주)를 마시고 있는 동안 우회로조 문도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동굴이 협소하여 우회로조 문도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지름길조 문도들은 서둘러 동굴을 떠났다. 다시 시루봉으로 돌아가는데 매니아가 점심때 마신 애고홀에 너무 취한 탓인지 행낭(行囊)을 챙기지 않고 그냥 두고 왔다. 그 바람에 그는 다시 동굴로 되돌아갔다왔다. 그리하여 매니아는 하루에 세 번 시루봉에 오른 유일한 문도가 되었다.

 

 

 


시루봉을 지나 오른쪽으로 이어진 하산길은 처음 얼마간 급한 내리막이 이어지다가 이내 부드러운 비단길로 변했다. 길 위로 대풍왕이 몰고 온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 있어 드러누워 마냥 뒹굴고 싶은 유혹이 일었다. 쟁이 분타주는 부지런히 전서구(傳書鳩)를 날려 우회로조의 위치를 확인하고 지름길조의 진행방향을 알렸다.

 

 


부드러운 능선길이 거의 끝나가는 지점에 이르자 조망이 좋은 전망대가 나왔다. 거기서 문득 시루봉을 돌아보니 긴 코를 늘어뜨린 코끼리의 머리형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니고단을 태우느라 잠시 머뭇거린 사이 나머지 지름길조 문도들은 모두 떠나고 월지 혼자 남게 되었다. 월지가 전망대를 벗어나 얼마 남지 않은 능선길을 밟아 오는데 갑자기 아아아아악! 하는 코끼리의 울음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전망대에서 얼마쯤 내려가자 길고 완만한 능선이 끝나고 길은 다시 왼쪽 사면으로 꺾어졌다. 사면길도 부드럽고 완만했다. 고개를 돌려 조금 전의 전망대를 쳐다보니 높이가 30~40미터나 되는 거대한 바위가 우뚝 서 있었다. 혹시 거기에 코끼리의 어금니가 있을까 싶어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상아질(象牙質)의 물체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오후 1시 40분 법룡사(法龍寺)에 도착하였다.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아 겨울을 잊은 남향(南向)의 조그만 암자(庵子)였다. 대웅전(大雄殿)보다는 칠성각(七星閣)과 산령각(山靈閣)이 더 눈에 띄었다.

 

 

 


법룡사 아래로 한 대의 유마차가 간신히 달릴 수 있는 임도(林道)가 경사를 줄이면서 고도를 낮추기 위해 심하게 꼬불거리며 이어지고 있었다. 법룡사를 지난 후 지름길조의 하산은 이 임도를 타고 공로까지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고도가 낮아져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참나무와 잡목은 줄어들고 소나무의 개체가 많아졌다. 역시 소나무는 인간(人間)과 가까운 나무였다.

 

 


서쪽으로 비스듬하게 비낀 햇살에 잠긴 마을이 나오고, 곧이어 임도가 잘 포장된 공로(公路)와 만나는 지점에서 딩딩당이 다소곳하게 세월방 문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산이 끝난 것이었다. 시각은 오후 2시 15분이었다.

 

 


월지가 딩딩당에 올라 행낭을 정리하고 다시 나온 후 차 한잔을 마실 시간이 지났을까..., 우회로조 문도들이 하산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문도들이 거의 다 내려오자 세월방은 공로에 접한 객잔(客棧)에 들어가 하산주를 마셨다. 객잔에서는 직접 담근 박주(薄酒)와 두부를 팔았다. 들쩍지근한 박주를 몇 잔 들이키고 두부를 오랫동안 독에 묻어 익힌 김치에 싸서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뒤끝이라 배가 불러왔다.

 


월지는 소화도 시키고 니고단도 태울 겸 객잔 밖으로 나왔다. 점소이(店少伊)가 객잔 한 모퉁이에서 커다란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놓고 두부를 만들고 있었다. 월지는 벌겋게 타오르는 장작불이 반가워 무심코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빨간 불꽃 사이사이로 문득 맑은 우윳빛 상아(象牙)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2007년 1월 13일

못은 달을 비추는 거울 月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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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도